죽바위 /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구만 마을)
행전 박영환

2016년 7월 20일(수), 청도문화원 우리문화 바로알기 일환으로 다시 이곳을 찾았다. 전번에 올 때는 바위 밑에 있는 천수사와, 옥산 쪽 큰 도로에서 조망을 하였으나 오늘은 북쪽 옆길을 통해 바위 위에 올라갔다. 이곳은 얼른 보면 사방이 절벽으로 되어 있어 도저히 올라가기 힘들 것 같으나 북쪽 한 지점에는 평지나 다름없는 길이 있다. 이것이 죽바위가 지닌 큰 특징이다. 또 이 길에는 흡사 계단처럼 돌에 홈이 패여 있다. 고맙게도 일부러 만든 것같아 오묘한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드디어 바위 위, 우리 초등학교 운동장만한 넓디 넓은 반석이다. 400미터 트랙을 만들어도 될 것 같다. 이름난 바위가 더러 있지만 이처럼 넓고 평평한 바위는 없을 것 같다. 전망도 좋다. 남산과 화악산이 가깝게 보이며 앞이 탁 트여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다.
초등학교 때 여러 번 이곳에 소풍을 왔다. 십리 길이었지만 죽바위에 올라간다는 즐거움에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때 참으로 많은 학생들이 이곳에 왔다. 아마 그 때는 우리 이서 초등 학교뿐만 아니라 대전, 풍각, 남부, 화양, 대산 등 산서지역 학교의 소풍 장소는 아예 이곳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학생들뿐만 아니라 문중이나 계원들의 친목모임인 회초 장소도 이곳이었다.냇가에 솥을 걸어놓고 술 한 잔을 하며 흥에 겨워 춤을 추고 노래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곳에서 회초도 하지 않고 학생들 소풍도 오지 않아 발길이 뜸한 것이 아쉽다.
죽바위 남쪽 정수리 부분, 소나무 한 그루가 자리잡고 있다. 이름하여 일송정이다. 흙이라고는 거의 없는 억센 바위 속, 그 척박한 환경에 어떻게 뿌리를 뻗어 자랄 수 있었을까. 참 용하다. 그리고 그 동안 수많은 태풍이 지나갔는데도 바람막이라고는 전혀 없는 허공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그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는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나는 일송정을 볼 때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의 고사가 생각난다. 중국 양나라 장승요가 용을 그려놓고 마지막으로 눈동자에 점을 찍으니 드디어 용이 힘차게 하늘로 올라갔다지 않는가. 어쩌면 죽바위의 눈동자는 일송정이라 할 수 있다. 조물주가 죽바위를 만들어놓고 마지막 마무리로 일송정을 내려 그 웅장하고 성스런 모습을 완성시킨 것이다.
소풍을 온 아이들은 이 나무 밑에서 노래자랑을 했다. 지금은 그 노래자랑도 들을 수 없으니 나무가 좀 심심하겠다. 오늘 우리도 그 때처럼 노래자랑도 하고 팔씨름도 하며 보물찾기를 한 번 하고 싶었다.
한편으로 이 바위 벼랑에 부처손이라는 귀한 약초가 자라고 있다. 그런데 손이란 의미에서 보면 부처손 그것은 죽바위의 손과 같다는 생각이 들며 어머니가 이마에 손을 얹고 자식을 기다리듯 죽바위도 이 손을 이마에 얹고 비가오나 눈이 오나 이 고장이 늘 복된 땅이 되기를 고대하는 것같다.
일행들 속에 감탄사가 여기저기 쏱아진다. 감탄사 하나하나가 바위의 키를 더 키우는 것 같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이름이 좀 특이하다. 왜 ‘죽바위’라고 했을까?
문화원장은 이 바위 이름은 남근에 비유되어 붙여졌다고 했다. 이 바위의 생김새가 멀리서 보면 남자의 심벌을 닮았는데 그것을 비속적인 어투 한 음절로 하면 '*' - 그렇게 발음 되는데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 없으니 조금 순화하여 ‘죽’이라 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맞은 편 마을 이름이 '함박골'과 '옥산' 인데 이것이 바로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단다. 건너편에 있는 조개물탕도 같은 유이다.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그럴싸하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왔을 때 담임 선생님은 옛날 이서국이 멸망할 때 신라의 침공을 피해 이서국 군사들이 이곳에 숨어 죽을 먹으면서 견뎠다고 죽바위라 했으며 그때 군사가 구만명이나 되었기에 바위 앞 동리 이름을 구만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군사가 구만명이란 것은 과장일 수 있다. 부족국가인 이서국에 그렇게 많은 군사가 있었을 리 없지만 ‘많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일설에는 죽바위 밑의 굴이 창녕까지 이어졌다고 하니 정말 그런 굴이 있다면 구만 명도 충분히 피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불행히도 그 굴이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서국 군사들이 죽을 먹었던 것과는 다르게 또 다른 죽 이야기도 있다. 죽을 넓은 그릇에 담아 둬야 마을이 편하다는 속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죽암(粥岩)으로 불렀다는 것. 거기에다가 바위의 색깔이 검은 팥죽의 색깔이기도 하니 멀리서 보면 평평한 큰 죽그릇도 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어떤 스님 한 분이 이곳을 지나다가 바위가 이렇게 잘 생겼으니 그 정기를 받아 장차 이 고장에 큰 장수가 태어날 것인데 장수가 어찌 죽을 먹고 힘을 쓰겠느냐고 하면서 대나무를 심어주며 장차 대나무처럼 기개 높은 장수를 기원하며 죽암(竹岩)이라 부르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바위 틈을 비집고 올라온 대나무들이 지금도 무성하다.
또 임진왜란과 얽힌 이야기도 있다. 조선 선조 때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들은 부산포를 짓밟고 한달음에 밀양을 거쳐 청도지역에 도착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적을 피해 바위가 있는 산의 정상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아래로는 바위의 절벽을 끼고 사방이 한눈에 보이는 요충지였기에 일전을 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성을 쌓고 대비하였다. 그런데 마침 왜적은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숨어 있는 것을 모르고 지나갔다. 그 때 목숨을 건진 주민들은 죽바위 위에 집결하여 만세를 부르며 기쁨을 나누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구(救)했다고 동리 이름도 구만(救萬)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록에는‘救’아니고‘九’로 표기되어 있는 곳이 많아 쉽게 납득하기 힘든 점도 있다.
아무튼 이 바위는 사람을 살리거나 아니면 삶의 기운을 불어 넣어 준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사람들은 이 바위에 늘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으리라. 최선이 무엇인가, 어쩌면 죽을 힘을 다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죽을 힘을 다하는 바위란 뜻의 ‘죽바위’인지도 모르겠다.
전설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청도 사람들은 이 바위가 있어 큰 위안이 되고 이야기꺼리가 있었으며 나아가 큰 자랑으로 삼았다. 지금도 청도의 50대 이상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바위에 얽힌 추억 한 두 가지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늘 그 자리에서 고향집을 지키는 어머님같이 언제 어느 때에 찾아도 따뜻한 품으로 맞아주는 죽바위. 일행들은 오늘도 또하나의 추억을 바위 위에 새겨놓고 내려왔다.
아득한 날 쫓기던 백척간두 그날에도
치마폭 크게 벌려 땀 닦아 다독이곤
젖물려 재워주시던 자애로운 가슴이여
세월의 갈피마다 하늘 되고 땅이 되어
문을 열고 기다리던 생명의 큰 둥지
일송정 푸른 기운이 구만리에 가득하다
( 박영환 '죽바위')

죽바위의 원경
입에서 입으로, 귀에서 귀로
열 사람이 오면 열 가지, 백 사람이 오면 백 가지
여름에 풀이 자라듯 불어나는 전설들
신라군에 쫓기던 이서국 군사들이 굴속에서 죽(粥)을 먹고 견뎠다고 죽바우라 카더라. 아니다. 임진왜란 때 고을 사람들이 죽을힘을 다해 싸우려고 올라갔던 방구인기라. 죽을 넓은 그릇에 담아 둬야 마실이 편하다고 ‘죽암(粥岩)이라 했데이. 큰 스님 한 분이 바위의 정기를 받아 장수가 태어나기를 기원하며 대나무를 심어 죽(竹)바위라고 했다. 모르는 소리, 생김새가 바로 남근 형상 아니가. 그래서 궁합을 맞춘다고 맞은 편 동네 이름도 함박골, 옥산이라 한기라. 이런 말, 저런 말, 끝이 없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저 허허 웃으며 먼 산만 쳐다보시니
오늘도 얼굴 없는 전설들이
줄 없는 줄다리기를 합니다
파수병인 듯
바위 위에 우뚝 선
소나무 한 그루
이름하여 일송정입니다
지킬 수만 있다면 비바람이 대수냐
억척스럽게 뿌리 뻗어
눈을 부릅떴습니다.
푸른 기운이 구만리에 가득한 일송정은
하늘이 죽바위를 청도 고을에 선물할 때
마지막으로 그린 눈동자 같아
또 하나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넓디 넓은 반석 위에 올라가면
시간이 슬금슬금 뒤로 돌아
소풍 온 까까머리 초등학생들이 올망졸망 까맣게 모여
보물찾기를 합니다
보물이 쏟아질 때마다 아이들은 도깨비 방망이라도 얻은 듯
신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담임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 따라 죽바위 가는 날은
전설의 나라를 만나는 행복한 날
추억을 한 아름씩 선물하던
죽바위 당신은 늘 안아주고 업어주는
우리들의 영원한 큰 바위 얼굴입니다.
(박영환 '죽바위 당신은')

평평하고 넓은 반석

죽바위 올라가는 길 - 일부러 계단을 만든 것 같다.

바위 앞

가까이에서 본 일송정

척박한 바위에 뿌리를 박고 있는 모습

멀리서 바라본 일송정

문화원장이 죽바위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죽바위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

죽바위 앞 마을

절벽이 어지러워 물러서서 내려다 보고 있다

죽바위를 배경으로 한 천수사 부처님

무성한 대나무

바위를 살펴보고 있다.

죽바위 앞 개울
다음은 2017년 8월 30일(수), 경북 선비 아카데미 수강생들이 죽바위를 다시 찾았다. 이날은 '청도의 의병활동'을 알아보기 위해 죽바위 뒤편에 있는 의흥예씨 산소를 찾은 것이다.


'선비정신과 임란 창의 의병의 인척관계 - 밀양 박씨와 의흥예씨 중심으로' - 박윤제 문화원장이 강의하고 있다.

죽바위를 배경으로 단체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