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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서국 이야기

이서국 이야기

 

박영환

 

  나는 이서면 수야리에서 태어났다. 우리 마을은 이서국 때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듯 이서국 왕자의 태가 묻혔다고 붙여진 태봉산(胎峰山)도 있다. 그리고 이서국 옛 터전에 자리를 잡은 ...”으로 시작하는 교가를 부르며 이서초등학교에 다녔고 이서중고등학교에서 첫 교단을 시작했다. 그 뒤 부산에서 생활했지만 교직에서 퇴직한 뒤 곧바로 고향집에 돌아와 살고 있다. 나는 부산에 살면서도 집에 간다고 하면 살고 있는 아파트가 아닌 이서의 고향집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서는 나의 처음이요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속에 문단활동을 하는 나의 입장에서 이서국(伊西國)을 소재로 한 작품에 무척 관심을 가졌다.

  ‘삼국사기 2에는 신라 14대 유례니사금(儒禮尼師今) 14(297)에 이서국이 신라를 침공하자 신라는 많은 병사로 막았으나 이를 물리치지 못하였다. 이때 홀연히 이병(異兵)이 나타나 신라 병사와 연합하여 이를 물리치게 되었는데, 이 이병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왕인 미추왕의 왕릉인 죽현릉(竹現陵)에 죽엽(竹葉)이 쌓인 것을 보고, 선왕이 신라를 도운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 ‘삼국유사 1 미추왕 죽엽군조(味鄒王竹葉軍條)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보아 이서국은 한때 신라를 위협할 정도로 큰 힘을 가진 나라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나라치고는 현재 그 역사적 자료가 너무 남아 있지 않아 매우 안타깝다. 지금 알려진 것으로는 도읍지가 화양읍 토평리 백곡(栢谷) 마을이고 신라국과 최후까지 접전을 벌였다고 알려진 오례산성(烏禮山城)과 이서산성(伊西山城), 태를 묻었다는 태봉산, 이서국이 패망하자 이서국 왕이 숨었다는 남산의 은왕봉(隱王峰) 등이 있을 뿐이다. 왕릉도 없고 유물도 별로 없으며 왕족의 성씨가 누구인지도 알려진 게 없다.

  그럼에도 청도 사람들은 이서국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나라는 비록 망하여 없어졌지만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물도 여전히 이서로 흐르기 때문에 이제 나라로서의 이름은 내려놓았지만 고향으로서는 영원히 남아 있는 것이다.

이서국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소설 중에는 이서국이 망하자 울릉도에 자리 잡았던 우산국(于山國)으로 피해 갔다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나라를 세웠다는 내용의 작품이 있었고 그리고 몇 편의 시와 소설이 발표되었다.

  청도 출신 시인인 최서림은 그의 시 청도 그리고 이서국에서

청도 사람에게 이서국은 끝도 시작도 없다/ 청도에서는 모든 사물이 이서국의 입구고 끝이다./ 승마산은 이서국의 요새/ 들판 건너 남쪽 산맥 너머 가야국과 맞섰다/ 지금도 가물면 꼭대기 성황당에서 봉화처럼 연기 오르고/ 산 여기 저기 질그릇 파편/ 방위병들이 새로 만든 참호들 속/ 사주 경계선 예비군들, 칼빈 세워두고 죽창 든 이서국 늙은 병사마냥 졸고(중략) 매운탕집 주인 늙은 상이군인/ 찌그러진 오토바이 끌고 와 캄캄한 밤 랜턴 켜고/ 절벽 아래 한 귀퉁이 수양버들 밑 거북바위에 쪼그리고/ 복수처럼 부풀어 오른 물에 메기낚시 한다/ 이따금, 주체스런 육체 뒤로 눕혔다 일어났다 하며/ 안드로메다서 온 별빛이 안경 너머/ 맥 풀린 눈 속으로 잦아들 때/ 낚싯줄 삼킨 시커먼 물이/ 하늘과 땅 휘돌아/ 끝도 시작도 없이/ 클리인씨병처럼 흐른다/ 이서국 속으로.

 

청도장이란 시에는

청도 사람에게 이서국은 세상을 보는 거울이다/ 이 세상이 이서국의 안이고 밖이다/ 이천 년 청도 사람 밥줄을 이어온 장터 어귀/ 오동나무 밑 생선 파는 늙은 과부 장씨, 대대로/ 장터 살아온 어머니 닮아 새까맣고 기름기 빠진 얼굴에/ 자잘한 욕정과 좌절이 검버섯으로 박혀/ 인생살이 모든 게 그저 목쉬는 흥정으로/ 그에게 세상은 절인 고등어다/ (중략) 잉어 고고 있는 솥 말없이 바라보며 장씨 딸/ 납빛 얼굴 노을에 담그고 도라지 꺾는 손에 이서국 수렵꾼 땀 흘린 눈물 젖는다/ 청도장서 어머니 따라 생선장사나 할 그녀, 지금/ 뼈까지 녹아내린 이서국 잉어 즙 짜내고.

 

  이상 2편의 시에서 청도 사람들이 어떻게 이서국과 접맥되어 있으며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를 알게 한다. 청도 사람들은 지금도 이서국 속에서 세상을 보며 그 속에서 호흡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사는 것이 몸에 익었고 편안한 것이다. 그게 이서국의 땅에 살고 있는 청도 사람들의 공통분모인 것 같다.

 

  역시 청도출신 소설가인 정한길은 소설 이서공주의 한을 썼는데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서술자)는 벼 이삭이 한창 물오르는 어느 날 화양면 유등마을 친척 어른의 회갑 잔치에 초대되어 가는 길에 연못 앞에 차를 세웠다. 정자의 낡은 단청이 소년 시절의 추억을 불러와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이곳에 오면 누구의 입에서인지 먼저 이서국의 전설이 흘러나왔다. 이곳에 이서국의 아리따운 공주가 정자에 앉아 가야금을 뜯었다고 했다. 그때 우리는 가슴과 귀로 공주의 가락을 들으며 황홀했다.

  친척댁의 회갑 잔치는 푸짐했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술이며 떡 요리에 어울려 마음 놓고 마시다 보니 술에 먹혀 곯아떨어졌다.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 귀를 곤두세웠다. 자세히 들으니 그 소리는 가야금 소리였다. 나는 가야금 소리가 들리는 정자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자의 난간을 잡았을 때, 휘모리 가락으로 울리는 가야금 소리에 발걸음이 딱 멎어버렸다. 눈길을 주는 여인과 마주쳤는데 첫눈에 이서국 공주였기 때문이다. 공주는 무릎 위의 가야금을 한쪽으로 내려놓고 이마를 숙여 예를 올리며 저는 이서국의 최후를 알리고자 이렇게 시간의 벽을 넘어 찾아왔습니다.” 했다.

  그날 공주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신라 군사들이 이서국의 서울인 백곡에 쳐들어온다는 전갈이 왕에게 도착한 것은 사흘 전 일이었다. 이서국 왕과 군사들은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상장군 우렴이 우렁찬 목소리로 아뢰었다. 그는 바윗돌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릴 만한 큰 힘을 지닌 특출한 장수였다. “상감께서는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소장 우렴이 목숨을 바쳐 진터에 나가서 지키겠습니다. 이미 신라군에게 진터에서 싸우자는 전갈을 보내어 약조를 받았습니다.” 진터야말로 이서국의 승전지였다. 어느 나라이라도 이서국을 침공할 때는 진터에서 싸우도록 되어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불문율과 같은 것이었다. 이곳은 신묘한 이적이 일어나 늘 이서국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그날 우렴은 부장인 좌렴 한 사람만 궁궐을 지키게 하고 말을 몰아 출정했다. 왕은 그 모습이 자못 든든했다. 그런데 한낮이 지나도록 신라군은 진터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하게 느낀 우렴이 병사 한 사람을 궁궐에 보냈는데 궁궐에는 이미 신라국의 깃발이 꽂여있었다. 급보를 받은 우렴이 군사를 이끌고 궁궐에 달려왔지만 이미 왕은 묶여 있었고 적들은 목에 칼날을 대고 있었다. 신라군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지 않으면 바로 왕의 목을 치겠다고 하였다. “비겁한 것들, 약조를 어기고 뒷산을 넘어왔구나. 원한은 원한을 낳을 것이다.” 통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상장군 우렴은 이서국의 수명이 다한 것을 느끼고 칼을 버린 뒤 스스로 자결하여 최후를 마쳤다.

이 때 공주도 적군을 피해 유등 연못으로 달려 뛰어들어 한 송이 연꽃이 되었다.

비겁한 신라 나는 고함을 버럭 질렀다.

 

  어떻게 이서국이 멸망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한 줄의 기록도 없다. 그러나 다만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하고 상상할 수는 있다. 그게 소설로 나타난 것이다.

 

  나도 그 동안 이서국에 대한 시를 꽤 많이 썼다. 그 중에 한 편을 소개한다. 이서국의 이야기 중에 가장 아쉬운 전쟁은 죽엽군과의 일전이다. 그 싸움에서 이겼다면 이서국은 강인한 왕국으로 우뚝 서서 삼국을 통일했을 것이다.

 

이서국 이야기(5) 죽엽군

박영환

 

이서국 사람들의 하루는

비련의 슬픔으로 큰 흉터를 만든

멱살 잡힌 자국을 만지면서 시작한다

운문령을 넘어

용맹스런 이서국 군사들이

서라벌을 공격했을 때

신라군들은 전의를 잃고

흐물흐물 무너지고 있었다

이서국 군사들은

곧 반월성을 점령할 희망에

가슴이 약동하여

푸른 휘파람 소리를 만들었다

그것도 잠깐

어디선가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나더니

댓잎을 귀에 꽂은

기괴한 죽엽군竹葉軍이 나타났다

흡사 검은 객귀客鬼같은 그들은

때를 만난듯이 거품을 물었다

불의의 습격에

호되게 멱살이 잡혀

한판 업어치기를 당한 이서국 군사들은

마술에 걸린 듯

하나 둘

미추왕릉의 댓돌에 걸려 넘어지기 시작했다

멱살 잡힌 자국은 온통 피멍투성이었다

그날 이후 이서국 사람들의 이마에는 열이 식지 않는다

쉬지 않고 울어대는 문풍지

달빛을 물어뜯는 삽살이의 앞발이

제 그림자에 놀라 허공을 할퀴고 있다

 

  이상 최서림의 시와 정한길의 소설, 그리고 나의 시 한편을 소개하며 이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을 살펴보았다. 앞으로도 이서국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이 생산되어 이서국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조명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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