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77)
통덕랑(通德郞) 예신겸(芮愼謙) 선생을 배향하는 황강재(黃岡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前 교장
청도군 매전면 내리, 황강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황강재(黃岡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예신겸(芮愼謙)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의흥이며 조선 영조 때 통덕랑(通德郞)을 지냈다. 고려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내고 부계군(缶溪君)에 봉해진 예낙전(芮樂全, 一世)의 16세손이며. 이서면 대전에서 새 터를 잡아 이곳으로 옮겨왔다. 후손들 중에는 문학과 덕행이 높은 명망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행남재 동훈(杏南齋 東薰, 1828∼1895, 시조 22세)은 타고난 성품이 온후하고 학덕이 높아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여 그 덕업이 빛났다. 1888년(고종 25)에 무과에 급제하여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 절충장군 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龍驤衛副護軍) 오위장(五衛將)이 되었다.
행남재의 고조부 덕빈과 증조부 항필(恒苾)은 증 통훈대부 사복시정(通訓大夫司僕寺正)이었으며 조부 석영(碩英)은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이었고 아버지 송담 시한(松潭 時漢)은 증 가선대부 이조참판 동지의금부사(嘉善大夫吏曹參判同知義禁府事)이었다.
행남재의 아들인 의재 대주(毅齋 大周, 1865∼1946, 시조 23세)는 연재 송병선(淵齋 宋秉璿)의 문에서 학업을 익혔다. 성현의 글을 읽고 그 뜻을 새기며 세상이 변해도 요동함이 없고 가난하고 궁색하여도 좌절하지 않고 특히 주자의 글을 좋아하여 그 내용을 바탕으로 저술하니 주변에서 군자로 칭하였다. 말년, 78세의 노구임에도 일제를 피해 가족을 이끌고 요동 흑룡성으로 갔다. 그뒤 남북 분단으로 소식이 끊기자 그를 따르던 족친과 문하생들이 유허비(대종회관에 이전)를 세웠다. 묘는 만주 흥안총성(興安總省)에 있다.
내리 마을 앞 국도 옆에 육군대위 예태원 도사비(陸軍大尉 芮泰元 悼思碑)가 있다. 6·25 전쟁이 났을 때 서울에서 한양대에 다니던 태원은 장교로 임관해 전쟁터로 나갔다. 육군 5사단 소속으로 휴전을 두 달 앞두고 그는 강원도 철원군 금화읍 전투에서 23세 꽃다운 나이에 전사했으며 서울 국립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이에 아버지 윤기(潤基, 시조 24세)가 애끊는 비애로 비를 세웠다. “(전략) 산이 막히고 물이 메말라 운수가 고르지 못했는지 마침내 전몰하고 말았구나. 돌에다 글을 새겨넣으니 실로 너무 억울하고 원통함을 담은 것이니 없어지지 않으리라. 여기 이 빗돌이 이 아이 살아서의 흔적이다.”
태원의 형 태경(泰景, 대종회 고문, 시조 25세)은 고명한 한학자로 류정시집(柳亭詩集, 한시 558수외 다수)을 펴냈다.
황강재는 정면 5칸이며 1939년에 초창하고 1960년에 새로 중건했으며 2012년에 다시 중수했으며 마루에 화산 권용현(花山 權龍鉉)이 쓴 ’황강재기‘가 걸려 있다. 정면 기둥에 걸려 있는 주련(柱聯)은 의재 대주의 칠언 율시로 “황강재는 하늘이 미리 장소를 점지한 곳이다”라고 했다.
이날 후손인 광해(光海, 의흥예씨 종친회장, 시조 26세) 씨가 재실을 안내해주었다.
’황강재‘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산 높고 물 맑은 터, 우뚝 솟은 황강재
그 기상 이어받아 이름 높은 후손들
유학도 큰 울림 유학 발자국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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