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74)
효우와 덕행으로 이름이 높은 모헌(慕軒) 박동위(朴東緯) 선생의 상원재(尙遠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前 교장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 신기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상원재를 찾았다.
이곳은 모헌(慕軒) 박동위(朴東緯, 1614∼1674) 선생의 묘재이다. 공의 본관은 밀성이며 청도 입향조인 소고공 건(乾), 병재 하징(河澄, 증 호조판서)의 후예이며 황(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공은 천성이 온후하고 효우를 깊이 행했으며 문학에 전념하여 덕행으로 고을에 이름이 높았고 선교랑을 지냈다.
후손들은 아들 성재공(惺齋公) 성한(成漢), 손자 거산공(居山公) 문혁(文赫)을 비롯하여 대대로 효우와 문학이 높았다. 정렬(廷烈), 정무(廷武), 증필(增馝) 등 여러 사람이 숭덕전 문헌록에 기록되었으며 이묵(伊黙)의 처 의흥 예씨는 효부(孝婦) 포장을 받았고 그 아들 재도(在燾) 역시 화릉참봉으로 효행포장을 받았는데 왜정이 내려준 상금은 수령하지 않았다. 또 상절(尙節), 윤덕(倫德), 현덕(賢德), 기영(箕榮), 기연(箕延), 기주(箕周) 등은 통정대부를 지냈다. 기표(箕杓)는무과에 등제하여 사과(司果)에 올랐고 원묵(元黙)은 조선말 고종 때 궁내부 주사 제중추원의관(除中樞院議官)이었으나 고종이 왕위를 선위 한 뒤에 가족을 데리고 운문 소천에 은거하였다. 재창(在昌)은 숭덕전 참봉을 지냈다.
선대인 병재 선생을 제향할 재실 및 문집 발간이 문중의 오랜 숙원이었는데 모헌공 현손인 상중(尙中)계 후손들(만석지기 재산과 많은 석학 배출)이 물심양면으로 노력하였다. 1820∼1850년대(순조, 헌종, 철종 연간)에 사검와(師儉窩) 증영(增永) 만취당(晩翠堂)과 그 아들 승해(升海)가 문집 발간을 위해 유문(遺文)을 수습했다. 그 뒤 승해의 요청으로 심영석(沈英錫)이 묘갈명을, 손자인 진덕(鎭德)이 부탁하여 이효순(李孝淳)이 행장을 지었다. 1857년(철종 8), 진덕의 요청으로 이휘재(李彙載)가 문집 서문을 지었으며 1858년(철종9), 사검와 만취당 등 후손들 노력으로 명동사(明洞祠)를 건립하였으며 1868년(고종 5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건물 전체가 훼철될 위기를 맞았으나 증손인 성균진사 기우(箕瑀)의 노력으로 강당 건물은 남았다. 1897년(대한제국 광무1), 증손인 기경(箕璟)이 명동실기(明洞實記)를 지었다. 1899년(대한제국 광무 3), 기경의 요청으로 이종기(李種杞)가 서명동실기후(書明洞實記後)를 지었다. 기우의 증손인 봉현(鳳鉉)은 의학박사이며 서울 세종병원 설립자이다.
종현(宗鉉)과 맹현(孟鉉)은 청도향교 전교를 역임했다. 종현의 2남인 영동(永東)은 총경으로 함안, 거제 경찰서장을 역임하고 의령서장 역임중 순직했다. 대통령 방위포장, 의령 경찰서 구내 및 청도 충혼탑에 모셔져 있다. 종손인 우석(佑碩)은 중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했다.
처음 이 재실은 1935년에 수야2리(행정 마을)에 건립했으나 1967년에 현 위치로 옮겼으며 1995년 등 여러 차례 중수했다. 정면 5칸 축면 1칸이며 대청에 ‘상원재 이건기’, ‘상원재기’가 걸려 있다. 재실 정면에 ‘水上樓’ 현판이 걸린 솟을대문이 있으며 별도의 공간에 관리사가 있다.
‘상원재’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물소리 아름다운 유서 깊은 상원재
어제를 받들며 오늘을 지키던 곳
수상루 큰 문을 열고 후손들을 부른다.


'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76)임란 중 창의하여 순절한 박경인(朴慶因) 선생의 용연정(龍淵亭) (0) | 2022.10.09 |
|---|---|
|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75)문학과 덕행이 높아 사림의 자랑이었던 훈련원 판관 박훈 선생의 경첨재(景瞻齋) (0) | 2022.10.08 |
|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73)많은 인걸과 석학이 배출된 공조참판 이교(李郊) 선생의 영모재(永慕齋) (1) | 2022.10.08 |
|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72)운경(雲耕) 곽예순(郭禮淳) 박사 선대의 재실인 녹명재(鹿鳴齋) (1) | 2022.10.08 |
|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71)이광두(李光斗) 선생의 사원재(思遠齋)와 3·1운동 기념비 및 구휼비 (0) | 2022.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