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73)
많은 인걸과 석학이 배출된 공조참판 이교(李郊) 선생의 영모재(永慕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前 교장
청도읍 유호리 조평산(趙坪山)에 자리잡고 있는 영모재(永慕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이교(李郊) 선생이다.
공은 고성 이씨 청도 입향조인 모헌공 이육(李育)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선조 좌의정을 지낸 용헌공 이원(李原)이 고조이며 증조는 현감을 지낸 뒤 이조 참판에 증직된 이증(李增)이며 조부는 승정원 도승지에 증직된 이평(李泙)이다. 부친인 모헌공은 찰방을 지내다가 형 망헌공이 갑자사화 때 목숨을 잃자 벼슬길을 버리고 청도에 은거했다.
공은 진사가 되어 산수 간에 은거하여 학문을 닦으며 가문을 지켰는데 뒤에 공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배위는 선산(善山)인 김석돈(金碩敦)의 딸인데 5남 1녀를 두었다.
장남 벽(碧)은 후사가 없고 2남 탕(宕)은 주부(主簿)였는데 숙부인 이추(李鄒)에 출계하였다. 3남 반(礬)은 동추이고 4남 롱(礱)은 첨지, 5남 경(磬)은 봉사(奉事)이며, 사위는 도사(都事) 안광소(安光紹)이다.
3남 반(礬)의 아들은 봉사 수(洙), 가선 동추 단(湍), 충의위 담(潭), 부호군 개(漑)이며 4남 롱(礱)의 아들은 주부 세창(世昌)이고 5남 경(磬)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종질 해(海), 염(溓), 잠(潛), 철(澈)과 창의기병(倡義起兵)하여 혁혁한 공을 세워 청도 5의사로 임란원종 3등공신으로 녹선되었다. 경의 아들은 부정(副正) 제(濟), 군수 숙(淑), 탁(濯)이다.
참판공 이교(李郊)선생의 자손이 번성하고 벼슬에 오르는 인걸과 석학을 배출하여 대문중의 기틀을 마련하였는데 실로 청도 고성 이씨 대다수가 공의 혈맥이라 할 수 있다.
영모재는 1779년 10월 청도읍 거연리에 처음 창건했는데 묘소와 거리가 있어 1805년 공의 묘소가 있는 청도읍 유호리 조평산 기슭으로 이건하여 재실 이름을 유천재(楡川齋)라 하다가 1965년 2월에 확장 중수하고 영모재(永慕齋)라 이름하였다. 2001년 대구 부산 간에 신고속도로가 건설되어 재실 땅이 도로에 편입되고 말았다. 이에 재실을 옛 부지에서 100여보 지점에 옮겨 2005년 1월에 완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목조와가 팔작지붕 정면 5칸 측면 1칸 전퇴이며 대청에는 ‘영모재 상량문’, 중건기’, ‘영모재 이건운(移建韻)’ 등이 걸려 있다. 솟을대문인 영수문(永綏門)이 있으며 관리사도 따로 설치되어 있다.
문학박사 부림(缶林) 홍우흠(洪瑀欽)은 영모재 중건기에 다음과 같이 감회를 피력했다.
“대청에 앉아보니 조평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유천의 명경지수가 오례산성을 휘감아 흐르며 운문산의 심원한 기맥이 창공에 번성하고 화악산의 웅장한 준령이 무성한 푸른 나무에 싸여 있다. 고인이 말하되 덕이 있는 사람만이 길지(吉地)를 얻을 수 있다고 했으니 참판공은 유구한 고성 이문의 적덕행선(積德行先)한 전통을 계승하여 양성시은(養性施恩)한 분이었으며 그 후예들은 조선(祖先)의 유훈을 실천하고 있으니 이 가문에 어찌 준재가 배출되지 않겠는가. 훌륭하다.”
‘영모재’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산빛이 고우니 물빛 또한 곱구나
조상이 빛나니 후손 또한 빛이 난다
길지 중 길지이더라 우뚝선 영모재.


'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75)문학과 덕행이 높아 사림의 자랑이었던 훈련원 판관 박훈 선생의 경첨재(景瞻齋) (0) | 2022.10.08 |
|---|---|
|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74)효우와 덕행으로 이름이 높은 모헌(慕軒) 박동위(朴東緯) 선생의 상원재(尙遠齋) (1) | 2022.10.08 |
|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72)운경(雲耕) 곽예순(郭禮淳) 박사 선대의 재실인 녹명재(鹿鳴齋) (1) | 2022.10.08 |
|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71)이광두(李光斗) 선생의 사원재(思遠齋)와 3·1운동 기념비 및 구휼비 (0) | 2022.10.08 |
|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70)학행이 빼어난 이요재(二樂齋) 삼형제의 화계재(華溪齋) (1) | 2022.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