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75)
문학과 덕행이 높아 사림의 자랑이었던 훈련원 판관 박훈 선생의 경첨재(景瞻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前 교장
청도군 이서면 대곡 4리 중리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경첨재(景瞻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밀성인 경첨재 박훈(朴薰, 1645∼1704) 선생이다. 공은 밀직부사공파 청도 입향조인 두촌 박양무(杜村 朴揚茂)의 후예이고 성균관 진사를 지낸 농암 박란(聾巖 朴鸞)의 5대손이다. 공은 문학과 덕행이 높아 사림의 자랑이었으며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이었다.
공의 5대손인 송고 박기록(松皐 朴基祿, 1848∼1917)은 일찍부터 경사(經史)를 섭렵하고 정주학(程朱學)을 깊이 연구하여 학덕을 베푸니 고을은 물론 영남의 선비들이 흠모하였다. 가훈 7조와 제현(諸賢)들의 행장을 모은 책이 전해지고 있다.
공을 추모하는 유허비(遺墟碑)와 송고서당(松皐書堂)이 있다. 이 서당은 공의 손자인 성균관 전학(成均館 典學) 일양 박용운(一陽 朴龍雲, 1919∼1995)이 창건했다. 1981년 창건시에는 송고재로 출발했으나 1990년에는 송고서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공을 기리는 제자 계를 크게 열었다.
일양 역시 학문이 높아 당신이 경영하는 청도 약방(경산시 중방동) 2층에 한문 및 예절을 교육하기 위해 ‘일양학당(一陽學堂)’을 무료로 개설하여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일양문집(一陽文集)’ 5권과 ‘일양속집(一陽續集)’이 있다.
중리 입구 개울가 언덕에 안동김씨(安東金氏)의 ‘효열각(孝烈閣)’이 있다.
안동 김씨(1885∼1926)는 김치균(金致均)의 딸로 태어나 16세에 경첨재 6대손인 박치정에게 시집을 왔지만 매우 가난한 집이었다. 길쌈 방적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던 중 시아버지 박기섭(朴基燮)께서 서간도로 가서 농사를 지어 보자고 하여 10년을 기약하고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목적지인 환인현(桓仁懸)은 아직도 수 백리가 남았는데 시아버지가 병을 얻어 별세하였다. 거기에다가 남편마저 병을 앓고 있는지라 시아버지 시신을 등에 업고 남편을 부축하여 200리를 걸어가서 산소를 드렸다. 그 뒤 남편의 쾌차를 위해 극진히 구완하였으나 워낙 병약한 몸이라 7년 뒤 사망하고 말았는데 애통하는 마음에 같이 따라 죽고 싶었으나 3대 독자 아들 때문에 그렇게도 할 수도 없었다.
그 뒤 아들 용학(龍鶴)이 9세 되었을 때 고향에 돌아가기로 결정했는데 이위(二位)의 존영(尊靈)을 다 모시고 갈 수없어 아들에게 “네가 장성하거든 네 아버지의 유해를 모시고 와서 장례를 치러드려라. 나는 부득이 할아버지의 유해를 먼저 모시고 가서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구나!” 하고는 3,000여 리의 길을 걸어와서 선영 아래에다 안장하였다.
이러한 효열이 청도문헌고(淸道文獻考)에 실렸고 청도향교에서 포창장(褒彰狀)을 수여했다.
경첨재는 1921년에 창건했으며 마루 벽에 박원규(朴元圭)가 쓴 ’경첨재기‘, 칠세손 박용운이 쓴 ’경첨재 상량문‘이 걸려 있다.
’경첨재‘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경첨재 덕행이 후대로 이어져
송고서당 대청마루 학덕으로 가득하고
효열각 안동 김씨는 만인의 귀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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