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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4)경북 지사와 청도 군수의 선대인 이인구(李仁龜) 선생의 모암재(慕巖齋)

모암재
청도신문(2024년 3월 20일)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4)

경북 지사와 청도 군수의 선대인 이인구(李仁龜) 선생의 모암재(慕巖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인협회장,  교장

 

  청도군 이서면 대곡1(한실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모암재(慕巖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이인구(李仁龜, 16861758)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경산(京山)이며 자는 응여(應汝)이다.

고려 낙거부정(樂居副正) 덕부(德富, 시조), 양양부사(襄陽府使) (),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흥문(興門), 정한강(鄭寒岡), 장여헌(張旅軒) 양 선생의 문인이며 여헌 선생의 행장을 모두 지었고 남전 향약을 만들어 향촌 사회의 발전을 주도했던 학가재(學稼齋) (+, 증조부), 생원(生員) 형만(亨萬, 조부), 증광사마(增廣司馬) 규태(奎泰, )가 공의 선대들이다.

  공의 조부는 경산 동계(東溪)에 살았다. 청도 입향조인 공은 1730(영조6) 경에 자손들의 복지가 될만한 좋은 땅인 이 마을에 터를 잡은 뒤 조상의 유덕을 추앙하며 후손과 후학들을 훈도했다.

  공의 증손 원수(元壽)는 수직으로 가선대부중추부사(嘉善大夫中樞府事)를 제수받았다. 현손 병업(秉業)은 효행과 덕행이 높았고 5세손 회곡 국준(晦谷 國埈)은 학행이 높은 선비였으며 박효수가 묘소의 갈명(碣銘)을 지었다.

8세손인 의근(義根,19382009) 1993년 경상북도 관선 도지사를 지내고, 대통령 행정 수석 비서관을 역임한 후에 1995년 지방 자치제의 시작과 더불어 경상북도 도지사를 3선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도지사 재임 동안 지방 자치 단체로는 처음으로 국제기구인 동북아 자치 단체 연합[NEAR]의 창설을 주도했으며 세계 최초의 문화 박람회인 경주 문화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이의근 지사의 동생인 중근(重根, 1941)은 청도군수를 지냈다. 2008년부터 민선 4기와 5 6년을 재임하면서 '함께하는 군정, 도약하는 새 청도'란 슬로건으로 모든 군민에게 희망을 주는 행복 도시 청도건설을 위해 2020 비전 전략의 큰 틀을 제시했으며 새마을운동 세계화 사업, 신화랑 풍류체험벨트 조성 등을 했다.

  모암재는 목조와가 정면 4칸 건물이며 하당과 정면 솟을 대문이 있으며 1946년 후손들이 합심하여 창건했다. 마루에는 장우원(張右遠)이 쓴 모암재기와 방후손 기영이 근찬한 모암재 상량문과 재실의 낙성을 축하하는 후손 달호(達浩)의 축시 원운(原韻)이 걸려 있다. 가까이 현재는 다른 사람의 소유이나 전에 의근, 중근 등 형제들이 살던 집도 있다.

  이날 공의 9세손인 희부(熙阜)씨가 재실을 안내하며 족보 및 여러 자료 등을 펼쳐놓고 문중에 대한 내력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특히 그는 11대조 형만이 1657(효종8)에 생원시(生員試) 합격한 교지와 생원시 역이시험 답안지’ [易義 君子 愼密而不出也 - 주역 계사상전(繫辭上傳)에 나온 말로 군자는 비밀을 신중히 지켜 집 밖을 벗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를 보관하고 있었다. 이는 무려 367년이나 되는 가보로 오동나무 상자 속에 특별히 잘 보관하고 있어 상태가 비교적 양호했다.

 

모암재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선대를 받들고 발복을 기원한 땅

후손들 대를 이어 그 뜻을 이어가니

지사에 군수도 배출 명성 높은 경산 이씨

 

모암재 전경

 

모암재기
생원시 ( 生員試 )   ‘ 역이 ’ 시험 답안지
생원시 합격 교지
이의근 지사와 이중근 군수가 살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