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5)고성(固城) 현령(縣令)을 역임한 슬산 윤취립(瑟山 尹就立) 선생의 경슬재(景瑟齋)

경슬재

 

청도신문(2024년 4월 3일)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5)

고성(固城) 현령(縣令)을 역임한 슬산 윤취립(瑟山 尹就立) 선생의 경슬재(景瑟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인협회장,  교장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 장기(長基)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경슬재(景瑟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슬산 윤취립(瑟山 尹就立, 16921762)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開國功臣) 삼중대광 태사공(三重大匡太師公) 신달(莘達)이며 9()을 쌓아 침범하는 여진족을 평정했던 문하시중 문숙공(門下侍中 文肅公) () 원수(元帥), 문과에 급제하여 소부윤(少府尹)에 올랐던 암()이 선대이다.

  슬산공은 숙종 18(1692) 경남 창녕군 연곡(燕谷)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깨달음이 빨라 학행이 매우 두터웠다. 영조 때 문과에 올라 고성(固城) 현령(縣令)을 역임하였고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제수되었다. 공은 재임 중 늘 백성의 편에 서서 청렴하고 결백하게 선정을 베풀어 우러러 칭송하며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당시에 당쟁(黨爭)이 극심한 가운데 나라가 어지러웠기에 더 이상 벼슬에 머물 뜻이 없어 산수(山水)가 아름다운 장기마을에 터를 잡아 은거하면서 자연 풍경과 시상(詩想)을 즐기며 후진 교육에 진력하며 여생을 보냈다. 묘소는 비슬산 아래 달라산(達羅山)에 있으며 이종일(李鐘鎰)이 지은 묘갈명(墓碣銘)이 있다.

  경슬재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며 전면에 세운 솟을대문인 앙첨문(仰瞻門)이 있다. 마루 벽에는 박희명(朴熙明)이 쓴 경슬재기와 이승목(李承穆)이 쓴 경슬재 상량문이 걸려 있다.

  경슬재 이전에 1947년 창건한 귀후정(歸厚亭)이 있었다. ’귀후정기는 김재화(金在華)가 썼는데 이곳에 슬산공을 비롯하여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상복(相福), 손자 시찬(時燦), 이찬(以燦)에 이르는 3(三世) 4(四公)을 위한 장소로 활용했다. 그러나 후손들이 늘어나면서 협소하여 종원들이 뜻을 모아 1998년에 경슬재를 새로 지었다.

  마당에는 후손 상목(相木, 청도향교 전교 역임)이 쓴 경슬재 건립비가 있다. 그는 건립비 말미에 일백여호 현령공 자손들은 경슬재 건립의 위선정신(爲先精神)을 오래도록 간직 전승하여 숭조정신(崇祖精神) 함양과 종친들의 화목을 위해 다 같이 열과 성을 다할 것을 다짐하자고 했다.

  경슬재를 낙성할 때 후손 선한(先漢)은 원운(原韻) 여러 해 준비하여 재실을 낙성하니 옛과 다름없는 새 경내가 배로 화명하도다. 비슬산 수려한데 청풍이 불어오고낙동강에 비친 달빛 서광이 가득하네. 선조께서 당년에 위대한 덕업 드리웠고 후손은 오늘에 작은 정성 다하도다. 원하건대 가업을 떨어뜨리지 말고 천추에 보수하여 칭송소리 이어가리라 했다. 이 원운에 많은 유림들이 차운(次韻)을 보내왔다. 그 중 몇 편은 벽에 걸고 2005년도에 종전의 귀후정 유운(歸厚亭 遺韻) 및 경슬재 낙성축시(景瑟齋 落成祝詩)를 모아 슬산 윤취립 선생 추모 시집 및 약사(略史)‘를 발간했다.

  이날 후손인 상목, 상권(相權, 경슬재 유사), 칠로(七魯, 청도향교 이사) 씨가 재실을 안내하며 설명을 해주었다.

 

경슬재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현령공 유업이 구비 서려 빛나는 곳

비슬산도 낙동강도 함께하여 축복하다

우뚝 선 파평 윤씨 가문 오래오래 이어지리

 

전경
귀후정

 

시집 및 약사
재실 낙성 기념 축하시 원운
경슬재 건립비
앙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