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0)
화양읍 홍도(紅桃)마을 전주 이씨 삼현(三賢)의 추모재(追慕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화양읍 신봉리 홍도마을 산기슭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추모재(追慕齋)를 찾았다.
전주인(全州人) 수산 이선종(壽山 李先宗, 1708∼1779) 선생은 1756년(영조 32) 경 경남 거창에서 이곳에 옮겨 터를 잡았다. 공은 양녕대군(讓寧大君) 9세손으로 돌산부정(突山副正) 창선대부(彰善大夫) 광석(廣石), 장임령(長臨令) 창선대부 숙령(淑齡), 무과(武科)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인로(仁老), 무과 봉사(奉事) 몽현(夢賢), 충의위(忠義衛) 명길(命吉)이 공의 선대이다.
공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자연 속에 은거하여 경학에 전념하고 후학들을 훈도하였다. 공의 종손(從孫) 문명(文明, 양녕대군 11세손)은 수직(壽職, 향년 81세)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증직되었다. 호는 화강(華岡) 또는 복정(福井)이다.
이 재실은 충의위공, 수산공, 가선공 삼현(三賢)을 위하여 1913년에 신축했으며 1998년에 중수를 거쳐 2008년 경에도 강판기와 대문을 수리했다. 정면 3칸(방2 마루1)이다.
이순필(李淳弼)이 추모재 기문에 “위 삼현은 학문과 덕행이 함께 높아 늙어도 더욱 독실하여 저술을 잘하고 모범적 행실이 넉넉하여 조야에서 존경하여 본보기로 삼았다.” 라고 했다. 이후(李垕)는 상량문을 지었다.
5세손 도은 호선(桃隱 護善)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과 침식을 같이 하고 대소변을 직접 받아내는 등 지극한 효행을 하여 향리에 칭송이 자자했다. 그는 추모재에 대한 시를 짓기를 “突兀新齋桃李園 數間軒室備凉溫 우뚝한 새 재실 도리원이로다, 몇 칸 집의 마루와 방은 시원하고 따뜻하네/ 洋洋如在三賢祖 念念無添百世孫 생생하게 계시는 듯, 삼현조여, 생각하고 생각하며 더럽히지 말라, 백세손이여/ 背後華山瞻主脈 眼前玉井溯眞源 등뒤의 화산 주맥을 바라보니 눈앞의 옥정은 근원에서 흘러내린다/ 藏修芬苾於斯足 花樹陰陰庇一門 향기로 제사에 전념하여 만족하니 화수(친척의 화목)가 우거져 한 가문을 보호하는구나 - 조용일 譯” 했다. 집안 동생인 문선(文善) 등 여러 일가와 더불어 힘을 합쳐 재실을 지었다. 향토보감(鄕土寶鑑) 사우정지(祠宇亭誌)에 기재되었다.
추모재 재실이 있는 이곳은 옛날부터 복숭아가 자생하여 홍도(紅桃)마을(일명 홍두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선인장봉(仙人掌峰) 아래 이른바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된 이곳은 “紅桃花發 千家富”라고 했다. 즉 ‘복숭아가 풍년이 들면 모든 집들의 살림살이가 풍부해진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일본 노무자로 끌려갔던 차일용이 해방 되어 귀국하면서 일본에서 개량된 복숭아 품종을 가지고 왔는데 이를 청도지역의 기후와 지형에 맞도록 개량하고 연구한 결과 종전의 품종보다 우수한 품종이 개발되어 다시 한번 복숭아 마을로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추모재’란 시제로 글을 올린다
삼현을 기리는 도은공의 시 한 편
백세를 이어가도 더럽히지 말아라
그 말씀 받드는 화수, 전주 이문李門 지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