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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2)우뚝 선 가문의 학풍을 이어받은 공조참의(工曹參議) 형서 장용(荊瑞 張鎔) 선생의 모인재(慕仁齋)

모인재
청도신문(2024년 2월 21일)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2)

우뚝 선 가문의 학풍을 이어받은 공조참의(工曹參議) 형서 장용(荊瑞 張鎔) 선생의 모인재(慕仁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인협회장,  교장

 

  청도군 각남면 함박리에 자리잡고 있는 모인재(慕仁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형서 장용(荊瑞 張鎔, 16241687)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인동(仁同)으로 시조는 고려 때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을 역임한 금용(金用)이다. 안세(安世, 시조 12세손)의 시호는 충정(忠貞) 호는 송은(松隱)이다. 자헌대부(正憲大夫), 덕녕부윤(德寧府尹), 증 이조판서(贈 吏曹判書)이다. 고려가 망하자 낙향하여 절의를 지킨 두문동(杜門洞) 72현 중 한 분이며 옥계서원(玉溪書院)에 배향되고 있다. (, 시조 15세손)는 남산파(南山派)의 파조(派祖)로 중직대부(中直大夫)로 사천현감(泗川縣監)을 지냈다.

  형서 공의 증조 희(, 시조 19세손)는 충순위(忠順衛),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贈 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이었으며 조부인 월포(月浦) 현도(顯道, 시조 20세손)는 한강 정구(鄭逑)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문학과 높은 덕행으로 일세에 인망(人望)이 높았다. 증 이조참판(吏曹參判)이다. 아버지 봉일(奉一, 시조 21세손)은 통덕랑(通德郞)을 지냈다.

  종조부(從祖父)인 여헌 현광(旅軒 顯光, 시조 20세손)은 조선시대 중기의 우뚝선 학자이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힘썼으며 수많은 영남의 남인 학자들을 길러냈다. ‘能做天下第一事業능주천하제일사업, 方爲天下第一人物방위천하제일인물’(천하에 제일 가는 일을 할 수 있어야 천하에 제일가는 인물이 될 수 있다), 이는 여헌이 18세때(선조 4) 우주의 원리를 논한 우주요괄첩(宇宙要括帖)을 저술하면서 끝 부분인 반궁첩(反躬帖)’에 적은 글이다. 어린 여헌의 원대한 포부와 지향을 밝힌 글로, 여헌은 이 글귀를 책상 옆 벽에 걸어두고 자신을 되돌아보았다고 한다.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형조참판(刑曹參判), 의정부우참찬(議政府右參贊) 등을 지냈다.

  시조의 22세손이며 인동 장씨 남산파 청도 입향조인 형서 장용 공은 1660년 경 구미시 인동 신월(新月)에서 각남면 함박리로 이거하여 터를 잡았다. 공은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냈으며 벼슬에서 물러난 뒤 자연을 벗하며 후학들을 가르쳤다. 그 뒤 아들 만창(萬昌, 참봉), 손자 대민(大敏), 대주(大柱)로 이어지며 후손들이 함박리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모인재는 정면 4칸 측면 1칸이며 3칸 규모의 대문과 하당이 있다. 1960년에 창건했으며 1989년에 하당을 새로 짓고 2015년에 크게 중수했다. ‘慕仁齋 현판은 장면(張勉, 국무총리 및 부통령 역임)의 글씨이다.

  방후손 일상(一相) 모인재기 우리 성씨의 본성은 이니 후손들은 慕仁 뜻을 받들어 천추만대 이어가자고 했다. 이날 후손인 손상(孫相, 청도 인동장씨 화수회장)씨가 최근에 인동 장씨 대종회에서 발간한 仁同張氏 千年史  여헌학보(旅軒學報)’ 등을 펼쳐놓고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모인재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대대로 이어진 올곧은 선비 가문

으로 익혀서 으로 빛나니

유림의 귀감이어라 드높은 모인재

 

장면(전 총리, 부통령)의 글씨인 모인재 현판
모인재기
인동장씨 천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