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03)
길손들의 안전과 소망을 빌던 팔조령 신당(八助嶺神堂)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前 교장
청도군 이서면 팔조령(398m) 기슭, 팔조리에 소재하는 신당(神堂)을 찾았다. 이곳은 팔조리의 동신(洞神)을 모신 제당(祭堂)이기도 하려니와 고개를 넘는 길손들이 안전과 소망을 비는 곳이었다.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80년(고종 17)에 중수를 했고 ‘팔조령신당중수상량문(八助嶺神堂重修上梁文)’이 전해오고 있으니 처음 지은 것은 이보다 훨씬 이전인 것으로 짐작된다.
원래 이 신당은 고개 마루에 있었으나 1950년대에 현재의 장소인 팔조지(八助池) 아래로 옮겨왔다고 한다. 신당 ‘헌성록(獻誠錄)’에 수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올린 것으로 보아 팔조리 동민은 물론 이웃이나 길손들까지 매우 관심을 갖고 지었던 것 같다. 토석 담장에 둘러싸인 신당 중앙에는 칼을 든 신장상(神將像)을 모셨는데 길손들은 그 앞에서 축원문을 읽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1960년대에 고개에 차도가 생기고 근래에는 터널까지 뚫려 걸어서 넘는 사람이 없고 보니 점차 그 기능을 잃으면서 지금은 신장상마저 없어져 썰렁한 상태다.
팔조령은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과 청도군 이서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이며 이곳은 문경 새재 및 작원관(밀양의 삼랑진과 양산 사이에 있는 낙동강을 낀 산 기슭)과 더불어 동래에서 서울을 잇는 영남대로 중에서 험하다고 소문난 3대 관문 중 하나이다.
50년대 후반, 대구의 학교에 다니면서 자취를 하던 나는 거의 매주 또래들과 이 고개를 넘어 다녔다. 가만히 생각하니 무려 60여 년 만에 오늘 팔조리에 들어선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다. 동리의 옛 모습은 거의 찾을 수 없었으나 저수지는 옛날 그대로 이기에 반가웠고 또한 옛날 길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팔조령은 사람과 물자를 운반하는 주요한 통행로일 뿐만 아니라 군사적 요충 역할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영남대로 여덟 개 방어선 중 팔조령과 성현을 연결한 제3 방어선이기도 했다. 또 이 고개는 미국 북장로교 소속 선교사였던 배위량(裵偉良, Rev. William M.Baird) 목사가 1893년 4월 17일 부산을 출발 4월 22일 청도에서 복음을 전하고 이 고개를 지나가기도 했다. 이를 기념하는 ‘청도 기독교 100주년 기념비’가 고개 길섶에 세워져 있다.
그리고 정상에는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하던 봉수대(烽燧臺)도 있었다. 청도 남산의 봉수를 받아서 대구 법이산(法耳山)으로 전달한 것이다.
험준한 이 고개는 원래 도둑이 많이 붙어 여덟 명이 조를 짜야만 넘을 수 있다고 ‘팔조령(八助嶺)’이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八鳥嶺’으로 표기한 적도 있다. 이는 우리말을 이두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팔조도 원래 ‘벌린 사이‘인데 축약되어 ’벌새‘ 가 되었으며 ’벌‘은 다시 느낌이 분명한 양성모음 ’발‘로 바뀌었다가 또 좀더 높고 험한 산의 의미를 주기 위해 거센소리 ’팔‘로 바뀐 것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제가 쓴 ’팔조령 고갯길‘이란 시를 붙여 봅니다.
팔조령 고갯길은
굽이굽이 소리가 쌓이는 길이다
길손들의 발자국 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산짐승 소리
거기에 꽃 소리, 구름 소리
오늘은 어떻게 넘나, 미워서 쳐다보던 한숨소리
오르다가 쉬어 가고 쉬었다가 오르던
턱에 닿던 거친 숨소리
“정말 혼자 지고 갈 수 있겠나, 조심해라. 가는 길로 쉬는 것부터 먼저 먹고”
“나도 인제 중학생인데 걱정 마이소, 집에 퍼떡 가이소”
딴에는 큰 소리
이십 리 고개 밑까지 이고 온 쌀자루와 반찬을 내려놓고
그래도 마음을 놓지 못해 걱정을 하던 어머니의 애잔한 목소리
고개 위 산신각
온전치 못한 아들을 제발 굽어 살펴달라고
애절하게 빌고 빌던 어느 어머니의 기도소리
오냐, 오냐 들어 줄게
그 소리 듣고 싶어
선홍빛 눈물 퍼붓는 무릎 닳는 소리
자기 가슴 한 번 치고 아들 가슴 한 번 치던 소리
“버스비로 과자 사 먹고 걸어가자”
고종 사촌 동배의 사탕소리
끝나기도 전에 좋다 해놓고
대구길 황톳길, 소달구지 소리 따라 걷던 길
입에 사탕 녹는 소리, 돌부리 차는 발의 비명소리
소리가 소리를 업어주며
이야기 소리를 만들어주던
팔조령 팔 고개, 추억의 그 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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