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02)
청도를 지군사(知郡事) 지역으로 승격시킨 김한귀(金漢貴) 선생의 오산재(鰲山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前 교장
청도군 화양읍 범곡리에 자리 잡고 있는 오산재(鰲山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원정공(元貞公) 김한귀(金漢貴) 선생이다. 공은 청도 김씨 시조인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의 6세손이며 5대조인 김선장(金善莊, 영헌공 아들)에 이어 청도의 읍격을 승격시키는 데 공이 컸다.
고려 시대에 청도에 토착하고 있던 성씨는 신(申), 김(金), 백(白), 이(李), 조(曹) 다섯 성씨였는데 그 중에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성씨는 청도 김씨였다. 시조인 영헌공은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등 제 관직을 거쳐 최 고위직 태부(太傅)를 제수받았으며 그 후손들 또한 중앙의 고급관료로 출사했다.
박홍갑은 ‘청도 연혁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청도의 연혁을 구체적으로 밝혔는데 그 중 읍격 승격 부분을 요약 발췌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고려 초에 신라 대성군(大城郡)의 오악(烏岳), 형산(荊山), 소산(蘇山)의 세 현을 합하여 청도군이 되었고 밀성군에 내속되었다. 따라서 청도군의 명칭은 940년(태조23)에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1010년(현종1) 이름을 도주(道州)로 고쳐 불렀다. 그러나 그 격이 높아졌던 것은 아니다.
1343년(충혜왕4), 상호군 김선장의 공으로 지군사(知郡事) 지역으로 승격했다. 지군사는 후일 군수에 해당하는 지방관이었는데 종전에 밀양 속현으로 감무를 파견하던 곳에서 승격된 것이다. 김선장은 충혜왕이 복위될 때 대호군의 신분으로 조적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1등 공신이 되었다. 그 뒤 충혜왕이 원나라에 압송될 때 김선장은 창에 찔리기까지 하며 저항했지만 막지 못했고 그 자신도 왕과 함께 압송되는 처지가 되었다. 그 이후 반대 세력에 의해 8살에 불과한 충혜왕의 아들 충목왕이 즉위하자 1344년(충목왕1) 청도는 다시 감무 파견지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를 다시 바로 잡아 승격시킨 이는 김한귀 공이다. 고려말 우여곡절 끝에 즉위하게 된 공민왕은 친원파를 제거하는 등 개혁정치를 단행하려 했지만 홍건적 등의 침입으로 곤경에 처했는데 이때 김한귀 공이 홍건적을 물리쳐 그 공로로 1등 공신에 오산군(鰲山君)으로 봉해지고 감찰대부(監察大夫), 전라도 도순문사(都巡問使) 등을 역임했으며 청도가 까닭 없이 감무로 강등된 것을 환원시켜 지군사를 파견하게 했다. 그 때가 1366년(공민왕15)이고 이때부터 조선에도 그대로 이어져 군수를 파견하는 곳으로 정착했다. 청도에서는 그 공로를 기리어 영헌공과 함께 화양읍 소재 ‘성황사(城隍祠)’에 수호신(守護神)으로 모시고 있다.
청도 김씨 가문에는 근세에도 순재(醇齋) 김재화(金在華, 1887〜1964)가 군지인 ‘속오산지(續鰲山誌)’와 ‘정정오산지(訂正鰲山誌)’를 간행하여 청도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도학(道學)의 정통성을 고수했던 문인으로 청도지역의 수많은 재실의 기문 및 묘갈명을 쓴 분이다. 문집은 본집 23권 외집 2권, 합 25권 13책이 있다.
‘오산재’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청도가 강등되어 감무 파견 웬 말인가
부당함을 사뢰어 지군사를 파견하다
청도를 크게 일으킨 청도 김씨 일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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