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96)
학문이 현묘한 경지에 이르렀던 곽지의(郭之義) 선생의 현암재(玄巖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前 교장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에 자리 잡고 있는 현암재(玄巖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자(字)가 의중(義仲)인 곽지의(郭之義)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포산(苞山)이며 시조는 고려조에 금자광록대부 문하시중 평장사(金紫光祿大夫 門下侍中 平章事)를 지내고 포산군(苞山君)에 봉해진 암곡 경(巖谷 鏡)이다. 병부상서(兵部尙書)에 포산군으로 봉해진 한정(漢正), 금오위 교위(金吾衛 校尉)를 지낸 자의(子儀), 봉렬대부 남해현감(奉列大夫 南海縣監)을 지낸 청백리 안방(安邦)이 선대이다. 조부는 충좌위 부사정(忠佐衛 副司正)을 지낸 승양(承陽)이며 아버지는 참봉(參奉) 당(瑭)이다.
공은 참봉을 지냈으며 곽씨 문중 참봉공파 파조(派祖)이다. 성품이 너그러웠으며 욕심을 멀리하고 선대의 행적을 받들어 도리를 지켰다. 항상 책 속에 현묘하고 심오한 이치를 탐구하여 이웃을 훈도하였는데 향중의 사람들이 그 덕행에 감화되었다.
맏손자 영진(永鎭)은 현풍에서 화양읍 유등리에 자리를 잡은 입청도 선조이다. 참봉직을 지낸 공은 경서(經書)와 사기(史記)에 통달하여 문장이 능통했고 올곧은 삶을 살며 모범을 보인 진군자(眞君子)였다.
둘째 손자 영탁(永鐸)은 군자감참봉(軍資監參奉)으로 늘 법도에 따라 청백하고, 제자들을 많이 길러냈으며 향인들이 늘 공경하여 우러러 받들었다.
증손 홍한(鴻翰)은 통사랑(通仕郎)에 이어 찰방(察訪)을 지냈고 홍익(鴻翼)은 통훈대부장악원정(通訓大夫掌樂院正), 현손 수징(壽徵)은 통정대부공조참의(通政大夫工曹參議)였다. 5세손 중기(重基)는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올랐고 6세손 태현(泰玄)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였다.
이처럼 대대로 벼슬 이어지고 충효와 학문으로 빛나는 가문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현암재는 2013년에 창건했으며 대지 387평에 정남향 56평 양옥 건물이다. 대청마루에는 한상우가 쓴 '현암재기'가 걸려 있다. 재실 입구에 읍경문(揖敬門)이 있고 마당 에 염원정(念遠亭)이 있다..
원래 이 재실은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예현리에 소재한 한옥 4칸 건물이었으나 세월의 흐름에 노후되었고 또 이곳이 대구 국가 산업공단에 편입되어 재실과 산소, 임야가 공단에 귀속되었으며 후손 모두가 청도 유등에 이주하여 살고 있는 터라 이곳에 새로 마련하게 된 것이다.
‘현암재’란 참봉공의 학문이 현묘한 경지에 이르러 밝지 않은 바가 없었고 ‘玄’자는 시조공의 호인 ‘巖’자와 같은 뜻이니 즉 ‘중엄’함을 말하는데 후손들이 이를 받들어 지키자는 뜻을 담은 것이다.
종손인 근영(謹泳)과 전 청도향교 전교인 종생, 경수(京守), 전 유도회장 승도(承道)를 중심으로 전 종원이 단합하여 선대의 재실 및 묘소 등 위선(爲先) 사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현암재’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대대로 높은 학문 올곧은 충효 가문
선대의 거룩한 뜻 이어가는 곽씨 문중
현암재 큰 가르침을 받들어 우뚝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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