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가덕도
부산시 강서구/ 2015년 2월 20(금)/ 행전

덕문중학교 전경


추억의 가덕도
행전 박영환
오랜만에 가덕도를 찾았다. 이곳은 오래 전에 내가 근무했던 '덕문고'가 있는 곳이다. 을미년 설 연휴 이듵날 가덕도 근처 명지 오션시티에 살고 있는 외손녀 가영이와함께 나섰다. 이곳은 중3인 이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내가 근무했던 곳이다. 이곳 덕문고에 재직하고 있을 때 이 아이 어미를 결혼시켰고 그 뒤 바로 떠났으니 정확하게 17년만에 가게 된 것이다.
우선 학교가 있는 성북리 쪽으로 차의 방향을 잡았다. 우리가 근무할 당시만 해도 다리가 없어 출퇴근하기가 힘들어 그곳 사택에서 생활했다. 그러다가 토요일날 선창에서 배를 타고 용원으로 나왔던 것이다. 그 당시 차는 어느 횟집 주차장에 세워두었다. 그 대신 일년에 몇 번씩 그 집에 회를 팔아주어 보상을 했다. 바다 가까이 세워두었기에 빨리 녹이 슬어 애를 태우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거가 대교와 연계되어 승용차로 싱싱 들어가니 격세지감이 들고 감개무량하다.
3년 근무를 한 곳이니 그렇게 긴 기간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르나 여느 학교와는 아주 다른 특이한 환경이었기에 오래 근무한 학교 이상으로 추억이 많은 곳이다. 내가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건물이 들어서기는 했지만 학교 본관은 그대로 있었다. 교정에 들어서는 순간 여러 얼굴들이 떠올랐다. 같이 동고동락을 했던 선생님들 - 같이 근무만 같이 한 것이 아니고 세끼 밥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잤던 분들이니 미운 정 고운 정이 듬뿍 들었던 분들이다. 이슥한 밤까지 술을 같이 마시고 새바지에서 혈석을 같이 줍고 연대봉 정상을 오르내리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부모들께서 이따금 새조개가 잡혔다면서 아니면 숭어가 많이 잡혔다면서 집에 초청을 했다. 정거 마을이나 천성마을 두문, 노루목 대항 등에 갔다 오려면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왕복 2시간 족히 걸리는 곳이었다. 딱히 다른 방법이 없으니 전부 걸어갔다가 걸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여름철, 천성고개를 넘어 올때는 반딧물이 무리를 지어 어두운 밤길을 안내했다. 두문의 공동묘지를 지날 때는 으슥하여 머리가 쭈볏 일어서기도 했다.
한 번은 노루목에 갔다오다가 발을 헛대뎌 바다에 빠진 분도 있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큰 일 날뻔 했다. 이런저런 인연을 가진 분들이라 지금도 덕우회란 이름으로 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만날 때마다 추억을 떠올린다.
그 당시 내가 사용했던 사택도 그대로 있었다. 사택이래야 겨우 잠을 잘 수 있는 방 한칸이었다. 문이 잠겨 있었다. 아마 새로 사택이 지어지고 난 뒤, 지금은 폐쇄된 것 같다. 거기에서 밤늦게까지 '덕문 50년사'를 정리하기도 했는데. 흩어진 자료를 구하기 위해 학교 창고를 뒤지고 동창 및 지역 인사, 이 학교에 근무하신 분들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 자문을 구했다. 결국 완성을 했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학교 주변도 많이 바뀌었다. 당시는 그야말로 조용한 섬마을이었는데 교통이 좋아지니 새로 집들이 많이 들어섰다. 점차 도시화되고 있다. 배 장로님이 쟁기로 갈던 논밭도 집들이 들어섰다. 학교 운영위원장이기도 하셨던 장로님은 내가 농어촌 특례학교를 만들기 위해 논의를 하러가면 잠시 쟁기질을 멈추고 논두렁에 걸터 앉아 수고가 많다며 손을 잡고 격려를 하셨지.
이곳은 농어촌 중에도 농어촌이지만 행정구역상 군이나 면이 아니고 부산광역시 강서구 천가동으로 되어 있었기에 대학 입시에 농어촌 특례학교가 아니었다. 이야말로 탁상 행정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를 관계기관 및 국회의원, 교육위원들에게 호소하고 메스컴에 알려 보도했다. 그러는 중에 이번에는 특례입학 소관이 교육부에서 각 대학으로 이관되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학부모들이 직접 탄원서를 들고 대학을 찾아갔다. 이러한 노력으로 마침내 서울의 몇 대학 및 부산과 경남의 대학들이 인정을 하게되었다.
결석 없는 달'을 한 번 하기 위해 아이들과 다짐을 한 적이 있다. 어쩌면 그것은 나의 소망일 뿐 아이들은 시큰둥했다. 보통 인문학교에서는 흔히 있는 일지만 이 학교는 사정이 달랐다. 여기에는 이 지역 출신 학생들과 시내에서 온 학생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시내에서 온 학생들은 시내 인문학교 진학에 실패하여 온 학생들이다. 이 지역 학생들 중에서도 상위층은 대부분 시내로 나가버리고 여기에 남은 아이들은 대다수 학업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생활지도가 학업지도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7월 달을 '결석없는달' 로 정했다. 방학이 있는 달이니 수업일수가 적기 때문에 좀 쉬울 것이란 생각을 했다. 산기슭에서 진을 치고 오지 않는 아이도 데려오고 바다낚시 간 아이도 데려오고 당구장에 숨어 있는 아이들도 데리고 왔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종업식을 하루 남겨놓았다. 이제 하루만 참으면 된다. 학생들에게 줄 빵이며 우유를 주문했다. 교감 선생님은 계란을 내어놓았고 다른 선생님들도 축하를 하며 선물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만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남은 그날, 종업식날, 두문에 사는 ㅂ 군이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집에 전화를 했다. 집에 있으면 당장 달려가 데리고 올 참이었다. 그런데 이미 부산에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땅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교정을 벗어나 바닷가로 나가는데 그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벌써 마흔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얼마나 변했을까. 이제는 자기 아이들에게 결석은 물론 지각도 하지 말라고 타이를 나이이다.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여러 추억들, 밤을 지새워도 못다할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 가덕도. 갈매기는 오늘도 시원한 날개짓을 하고 있다.

덕문고등학교 본관

다목적으로 사용되는 덕문관

이 학교는 공립학교이지만 이 고장 출신 눌원 신덕균 선생께서 지역발전을 위해 학교 부지와 건물을 지어 기증했다. 그 뜻을 기린 송덕비이다.



두문 마을 앞에는 지금도 미역을 따는 사람들이 많다



부산 신항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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