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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송은 박익 선생/ 용강서원

  송은 선생

 

                                                                    

 

                                                                                   

 

 

 

 

 

 

                                                                   행전 박영환

 

 

    2012년 4월 1일 경남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산 134에 위치한  충숙공(忠肅公) 송은(松隱) 박익(朴翊) 선생(先生)  벽화묘(壁畵墓)- 사적지 제459호 - 를 찾았다.  
   선생은 나의 19대조이며 고려말 두문동 72현으로 유명한 분이다. 

  선생은 1332년 밀양 삽포리에서 출생, 자는 태시(太始), 호는 송은(松隱) 시호는 충숙(忠肅), 본관은 밀성이며 은산부원군(銀山府院君) 휘(諱) 영균(永均)公의 장자이다.

  선생은 공민왕조에 등과하여 벼슬이 정경에 올랐고 여러번 왜구와 여진을 토벌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고려말 포은, 목은, 야은, 사촌인 도은등과 함께 8은으로 일컬어지는 충절신이다. 조선 태조 등극 후 1395년 공조, 예조, 형조, 이조, 좌의정 등 다섯 차례나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이 벽화묘는 1420년(세종2년)에 축조된 것으로써, 1999년 9월 태풍으로 침하된 봉분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지석(誌石), 유물과 함께 조선시대 벽화묘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굴된 채색 벽화묘(壁畵墓)이다.

   봉분의 규모는 가로 605cm, 세로 482cm, 높이 230cm의 고려식 방형묘이다.

석실은 봉분 정상부에서 410cm 깊이에 풍화암반층을 굴착하여 남북으로 장방형 토갱(土坑)을 설치 그 속에 토갱을 따라 화강암 판석을 길이 234cm, 높이 80cm, 폭 90cm의 장방형 석실을 조립한 뒤 먼저 판석 내면을 석회로 도장하고 그 위에 채색 벽화를 그렸다.

   이 벽화묘의 특징은 그 시대에 흔히 그려진 일반적인 벽화와는 달리 인물, 도구, 말 등의 생활풍속도와 장벽 양쪽 가장자리에 매죽 그림을 배치한 것이 주목된다. 또한 벽화내용 가운데 양쪽 장벽 그림 속 인물들이 4인 1조를 이루면서 피장자의 두향 쪽으로 이동하고 있고, 남서 단벽의 그림은 모두 상호 대칭관계의 구도로 그려져 있다.

   이 벽화묘에 그려진 매죽은 고려 태조 왕건릉의 사신도와 함께 인물풍속도에서 세한삼우가 교대해서 그려진 것은 국내에서는 유일한 벽화로서 고려말 조선초 벽화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00년 12월 2일,  KBS 역사 스페셜 프로그램에 '발굴 밀양 고분 벽화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자세히 방영된 적도 있다.

 

    고향 청도 내에  성씨 중에 우리 일가들이 가장 많다. 외지로 나간 일가들까지 합치면 수천 호가 될 것이다. 그 모든 사람이 송은 선생의 자손이다. 이서면 모산에 선생을 모시는 용강재를 지어 춘추로 향사를 올리며, 자손들은 선생의 자손임에 큰 긍지를 가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선생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어온 터라, 비록 19대조이긴 해도 바로 친 할아버지처럼 느끼면서 자랐다. 사실 우리 가문의 화두는 송은 선생으로부터 시작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든 일에 구심점이었다. 그래서 선생의 자손이기에 행신범절을 아무렇게나 할 수 없고, 일가 간에도 서로 다투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선생의 자손으로 살아가는 도리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산소에 너무 늦게 찾아온 것 같다. 늘 바쁘다는 핑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마음만 내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죄스런 마음이다.

  이곳의 공식적인 명칭은 '古法里'이자만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는 '바우밤'이라고 하셨다. 아마 옛날에는  '所古夜'라고 했는데 이를 우리말로 풀면 '바예밤'이 되니 '바우밤'이라고 한 것 같다.

  우선 선생을 모시는 보본재(報本齎)부터 찾았다.  대문에 '不二門' 현판이 걸려 있었다. 여말 충신이었던 선생께서 이성계의 회유에 따르지 않고 충절을 지켰던 것을 기리는 것이다. 마침 재실을 관리하고 있는  박한식님이 우리 일행을 맞아 안내를 해주었다. 박한식님은 소요당 자손으로 5대조때부터 청도에서 이곳에 와서 살고 있다고 했다. 

  재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소에 올라가 잔을 올리며 절을 했다. 

  "할아버님, 너무 늦게 찾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전에도 그러했지만 앞으로도 할아버지의 자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할아버지께 누가 가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

  따스한 미소로 맞아 주시는 것 같았다.

 

세월이 흘러가도 

흘러가지 않는 것 

물보다 진한 피

이어서 또 이어져 

아무리 잊고 있어도 

할아버지는 영원하다 

 

     

 

 

보본재 정문 '불이문'

 

 

 

 

비각

 

 

 

 

보본재기

 

 

보본재 중수기

 

송은 선생 묘소

 

 

산소 안의 벽화

 

산소 안의 벽화

산소 안의 벽화

 

산소 안의 벽화

 

송은 선생 산소 앞에서 잔을 올리고

 

 

잔을 올리는 박영신 박화식 교장

 

 

발굴된 벽화

 

 

 

 

 

한 동리에 사는 할아버지 자손 박영신, 박화식 내외와 함께

 

 

 

* 다음 내용은 밀성박씨 송은공파 대종회에 발간한 자료를 복사한 것입니다.

벽화에 대한 연구는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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