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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쌍계사

         삼신산 쌍계사

 

 

                                                                     행전 박영환

 

 

 

                                                           

 

 

 

  곳곳에 꽃소식이 전해오기는 해도 바람끝이 매운 3월 어느 날, 경남 하동 쌍계사를 찾았다. 이른 철이라 벚나무는 아직도 꽃눈을 내어놓기가 부담스러운지 몹시 경계하고 있었다. 그 유명한 십리 벚꽃을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쌍계사(雙磎寺)는 이름 그대로 두 계곡물이 인연 따라 흘러와 조화를 이룬 곳에 자리한 절이다.  처음에는 옥천사(玉泉寺)라 했으나  정강왕 때,  두 물줄기가 절 입구에서 만나 합친 뜻을 새겨 쌍계사란 이름을 하사하고 최치원으로 하여금 '쌍계석문(雙磎石門)'을 쓰게 하여 바위에 남겼다고 한다.  

   지리산은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이라 하여 옛부터 영산으로 자리매김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숭배하고 경외하고 있다. 인연의 조화는 이 지리산의 장엄함과 섬진강의 평화스러움을 담기도 했다.  

  하필이면 칡꽃이었고 그 칡꽃이 눈속에 필 수 있었을 까, 724년(신라 성덕왕 23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삼법 화상이 당나라에서 육조 혜능의 정상(머리)을 모시고 왔을 때 눈 속에 칡꽃이 핀 신령스런 곳을 발견하여 봉안한 것이 이 절집의 시초라고 한다. 칡은 생명력이 왕성하기로 유명하다. 끊어도 잘 끊기지 않고 잘라도 또 자라는 것이 그다. 아마도 오래오래 불법의 도량으로 어려움이 밀려오는 눈 속에서도 이어지리라는 예언적 암시가 들어 있었을 것 같다

   이후 대가람으로 우뚝 서게 한 이는 진감국사이다. 이때는 범 몇 마리가 등장한다. 범이 누구인가, 호랑이, 즉 산중 왕이다. 그들이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절터를 찾는 진감국사에게 옛 삼법스님이 세운 절터로 인도하였던 것이다. 이때가  840년(신라 문성왕 2년) 이다.  

 

팔영루와 구층석탑

 

   진감선사는 불교 음악인 범패(梵唄)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선사는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여덟 음률로 된 어산(魚山)을 작곡했으며 작곡을 한 누각 이름을  팔영루(八詠樓)라 했다. 아무튼 이 팔영루는 우리나라 불교 음악의 발상지로서 훌륭한 음악과 많은 명인을 배출했다. 또한 선사는 주변에 차밭을 조성하고 선원으로 가꾸었으니, 이때부터 명실공히 선(禪), 다 (茶), 음(音)의 성지가 된 것이다. 

 

대웅전

 

  쌍계사는 진감선사에 의해 이루어진 금당영역과 임진왜란 이후 벽암 각성스님에 의해 중수된 대웅전 영역이 있는데 금당은 남향을 대웅전은 서향을 향하여 각을 이루는 파격적인 구도를 나타내고 있다.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는 국보 제47호이다.

신라 진강왕이 진감선사의 높은 도덕과 법력을 앙모하여 대사가 도를 닦은 옥천사를 쌍계사로 고친 뒤 정강왕 2년(887년)에 건립한 것으로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썼으며 승, 빈영이 새겼다. 이 탑비는 고운 최치원의 사산비의 하나로 유명하다.

  진감선사는 애장왕 5년(804년)에 당나라에 들어갔고, 흥덕왕 5년(830년)에 귀국, 쌍계사를 짓고 역대 왕의 존경을 받다가 문성왕 12년(85) 쌍계사에서 77세로 입적하였다.  현재 비신의 우측 상부에 크게 손상된 부분이 있고 또 균열이 상당히 심한 것 이 마음에 걸렸다.

 

 

 

 

 

화엄전

 

   여기에 보관된 이 불경책판들은  모두 33종 1743판이다. 쌍계사에는 해인사 다음으로 많은 경판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 목판들은 육조 현능대사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기록하여 만든 것으로 국내 유일본이며, 정확한 간행연도는 알 수 없지만 선조 36년(1603) 경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쌍계사의 말사인 능인암에서 간행하여 쌍계사로 옮겨온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쌍계사 본사에서 간행한 것과 승려문집도 있다.

 

 

 

범종루

 

 

성보 박물관

 

  마침 문을 열지 않는 화요일이라 보물과 문화재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런데 개관을 하지 않는 날도 입장료는 똑 같이 징수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행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절문을 나서니 봄을 재촉하는 물소리가 가득했다.

 

                                                                                                           201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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