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니서원/ 행전 박영환

구니서당(求尼書堂)을 찾아서
행전 박영환
3월 어느날 경남 창녕군 고암면 계상리 소재 구니서당(求尼書堂)을 찾았다.이곳은 조선 전기 대표적인 성리학자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선생의 후손들이 조상을 받들기 위해 약 300년 전에 세운 것으로 묘각과 서당으로 쓰던 곳이다.
이곳은 아직도 서당을 관리하는 분이 옆 관리사에 살고 있었으며 마침 춘향을 드린지 얼마되지 않아 사람들이 찾은 흔적을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었다. 흔히 서당이나 서원등이 집만 덩그렇게 지어놓고 관리사도 없이 문을 잠궈놓는 통에 썰렁한 곳이 많은 데, 이곳은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아 반가웠다.
이곳 역시 처음에는 서원으로 출발한 곳이다. 1866년에 김굉필 선생의 둘째 아들 감찰공 김언상을 비롯한 3대 4명의 위패를 모시고 서원으로 지었으나 1868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폐쇄되었던 것이다. 그 뒤, 1916년에 규모를 넓혀 정당을 지었으며 경내에 사당, 동재, 서재, 문루, 관리사 등이 있다.
일찍이 할아버지로부터 한훤당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릴 때이니 확실한 이해는 못했지만 말씀하시는 분위기로 보아 대단한 분이란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집안의 아지매들 중에 '기팔댁'이란 택호를 쓰는 분이 몇 분 있었다. 뼈대가 있는 가문에서 자란 분이라 행신범절이 바르다고들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실은 '기팔'이 아니고 '桂八'을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 뼈대가 있다는 것은 바로 한훤당의 후예란 것이다.
사실 이곳은 고향 청도와는 가까운 곳에 있다. 풍각면 금동 쪽에서 비티재를 넘으면 곧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청도의 큰 어른인 탁영 김일손 선생과는 동문수학을 했으며 사화에 같이 연루 된 분이기에 꼭 한번 찾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마침 기회가 닿아 찾게 되었으니 숙제 하나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김굉필 선생의 본관은 서흥(瑞興)이다. 자는 대유(大猷), 호는 사옹(蓑翁)·한훤당(寒暄堂)이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김종직(金宗直)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면서 특히 《소학(小學)》에 심취하여 스스로 '소학동자(小學童子)'라 칭하였다고 한다. 1480년(성종 11) 초시에 합격하였으며 형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498년(연산군 4년),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탁영 김일손이 사초에 올린 것이 기화가 되어 사림파들이 대거 숙청된 무오사화(戊午士禍)때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조광조(趙光祖)를 만나 학문을 전수하였다. 1504년(연산군 10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극형을 당했으나 중종반정 이후에 신원되어 도승지로 추증되고, 1517년에는 정광필(鄭光弼) 등의 소청에 의해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문인으로는 조광조·이장곤(李長坤)·김안국(金安國) 등이 있으며, 16세기 기호사림파(畿湖士林派)의 주축을 형성하였다. 특히 선생은 5현 중 한 분이다. 1610년(광해군 2)에 정여창(鄭汝昌)·조광조·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 선생 등과 함께 5현으로 문묘(文廟)에 배향됨으로써 조선 성리학의 정통을 계승한 인물로 인정받았다. 아산의 인산서원(仁山書院), 희천의 상현서원(象賢書院), 순천(順天)의 옥천서원(玉川書院), 달성의 도동서원(道東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문집에 《한훤당집》, 저서에 《경현록(景賢錄)》《가범(家範)》 등이 있다.
문루에 앉아서 바라보니 화사한 꽃망울들이 봄 소식을 물고 있었다.
2012.3.31.

춘향 집사 분정

사당

문루

문루 앞에서 본 서당 정경

문루에서 바라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