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문협 문학기행 - 다솔사 및 유배문학관/ 행전 박영환
2018년 3월 31일 청도문인협회 회원들이 경남 사천의 다솔사 및 남해의 유배문학관 등을 다녀왔다.

다솔사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길(용산리) 봉명산(鳳鳴山)에 있는 절.
511년(지증왕 12)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여 ‘영악사(靈嶽寺)’라 하였고, 636년(선덕여왕 5) 건물 2동을 신축하고 다솔사로 개칭하였다. 676년(문무왕 16) 의상(義湘) 대사가 다시 ‘영봉사(靈鳳寺)’라고 고쳐 부른 뒤, 신라 말기 도선(道詵) 국사가 중건하고 다솔사라고 하였다.
1326년(충숙왕 13) 나옹(懶翁)이 중수하였고, 조선 초기에 영일·효익 등이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1686년(숙종 12) 복원하였다. 1748년(영조 24) 당우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1758년 명부전·사왕문·대양루 등을 중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대양루를 제외하고 1914년의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재건한 것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된 대양루(大陽樓)를 비롯하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8호인 극락전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9호인 응진전, 대웅전·나한전(羅漢殿)·천왕전(天王殿)·요사채 등 10여 동의 건물이 있다.
이 절은 일제 때 한용운(韓龍雲)이 머물러 수도하던 곳이며, 소설가 김동리(金東里)가 『등신불(等身佛)』을 쓴 곳이기도 하다.



청도문협 회원들이 다솔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차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다솔사 차밭






◯남해유배문학관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 남해대로 2745에 있다.
남해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180여 명에 이르는 유배객이 거쳐간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남해유배문학관은 2009년 5월 기공식을 가지고 2010년 11월 1일 개관했다.
남해유배문학관은 부지 37,469㎡, 건물면적 2,416㎡에 향토역사실, 유배문학실, 유배체험실, 남해유배문학실, 김만중 특별실, 다목적홀과 야외공원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향토역사실에는 1/65 비율로 축소된 남해대교와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과 팔만대장경 판각지였던 남해의 역사, 민요 직접 듣기 코너, 자암 김구의 화전별곡 전시, 그림자 감응을 통해 멸치를 잡는 체험코너 등이 갖춰져 있다.
유배문학실에는 유배시 전시, 옛날 형벌, 세계의 유배 이야기, 유배문학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유배체험실에서는 관람객이 유배객이 되어 어명을 받아 유형을 떠나 유배지에 도착하기까지 과정을 소달구지 함거에 갇힌 채 3D입체영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밖에도 전자상소문 쓰기 체험, 삽화로 된 유배이야기 영상 등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남해 유배문학실에는 남해로 유배 온 김구·남구만·김만중·이이염·류의양·김용의 생애와 그들의 문학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류의양의 〈남해문견록〉과 김만중의 〈구운몽〉 애니메이션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남해유배문학관의 야외공원은 유배객이 살았던 초옥, 사씨남정기 이야기 패널, 십장생 조형물, 남해바다를 형상화한 수변공원 등으로 꾸며져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별도의 관람료는 없다.



유배문학 관련 책들을 살펴보고 있다



◯구운몽[九雲夢]
조선 후기 숙종 때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이 지은 고대소설.
이재(李縡)는 《삼관기(三官記)》에서 “효성이 지극했던 김만중이 모친을 위로하기 위하여 《구운몽》을 지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작품은 1687년(숙종 13) 9월부터 이듬해 11월 사이에 작자가 선천(宣川) 유배지에서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한문본과 한글본이 모두 전하는데, 한글작품이 한문작품보다 앞선 것인지의 여부는 단정하기 어렵다. 《구운몽》의 전래본(傳來本)은 국문사본(國文寫本)·국문간행본·한문사본·한문간행본·번역본(飜譯本)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현재 전하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서울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인 4권 4책으로 된 국문필사본으로, 다른 한글본이나 한문본보다 연대가 앞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언어·문체 등이 우아한 것으로 보아 김만중 시대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듯하여 김만중 원작일 가능성도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 성진(性眞)은 육관대사(六觀大師)의 제자였으나 8선녀를 희롱한 죄로 양소유(楊少游)라는 이름으로 인간세상에 유배되어 태어났다. 그는 소년 등과하여 하북의 삼진과 토번의 난을 평정하였고, 그 공으로 승상이 되어 위국공에 책봉되고 부마가 되었다. 그 동안 그는 8선녀의 후신인 8명의 여자들과 차례로 만나 아내로 삼고 영화롭게 살다가 만년에 인생무상을 느끼고 호승(胡僧)의 설법을 듣고 크게 깨달아 8선녀와 함께 불문(佛門)에 귀의하였다. 양소유의 일생은 군사적 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으나, 영웅의 일생의 전형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은 후대 소설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옥루몽》 《옥련몽(玉蓮夢)》 등은 이 《구운몽》을 토대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구운몽》은 저작 동기야 어떠하든지 이전에 있었던 다른 소설에 비하여 새로운 형식의 작품으로서 한국 고대소설 문학사에 있어 불후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조선 숙종 연간에 서포 김만중이 한글로 지은 고대소설.
《남정기(南征記)》라고도 한다. 확실한 창작 연대는 미상이나, 숙종이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를 폐위시키고 희빈장씨를 왕비로 맞아들이는 데 반대하다가 마침내 남해도(南海島)로 유배, 배소에서도 흐려진 임금의 마음을 참회시키고자 이 작품을 썼다고 하므로, 1689년(숙종 15)에서 작자가 세상을 뜬 1692년(숙종 18) 사이에 썼을 것으로 본다.
작자는 한국문학이 마땅히 한글로 쓰여져야 한다고 주장, 한문소설을 배격하고 이 작품을 창작하였는데 이는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金鰲新話)》 이후 잠잠하던 소설문학에 허균(許筠)의 뒤를 이어 획기적인 전기(轉機)를 가져오게 하였다. 즉, 소설을 천시하던 당시에 참된 소설의 가치를 인식하고 이 소설을 씀으로써 이후 고대소설의 황금시대를 가져왔다.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 명(明)나라 때 유현(劉炫)의 아들 연수(延壽)는 15세에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된다. 유한림은 그후 숙덕(淑德)과 재학(才學)을 겸비한 사씨(謝氏)와 혼인하였으나, 9년이 지나도록 소생이 없자 교씨(喬氏)를 후실로 맞아들인다. 그러나 간악하고 시기심이 많은 교씨는 간계로써 사씨부인을 모함하여 그녀를 폐출시키고 자기가 정실이 된다. 그후 교씨는 간부(姦夫)와 밀통하며 남편인 유한림을 조정에 모함하여 유배 보내게 한 다음 재산을 가지고 간부와 도망치다가 도둑을 만나 재물을 모두 빼앗기고 궁지에 빠진다. 한편 유한림은 혐의가 풀려 배소에서 풀려나와 방황하는 사씨를 찾아 다시 맞아들이고 교씨와 간부를 잡아 처형한다.
즉, 작중인물 중의 사씨부인은 인현왕후를, 유한림은 숙종을, 요첩(妖妾) 교씨는 희빈장씨를 각각 대비시킨 것으로, 궁녀가 이 작품을 숙종에게 읽도록 하여 회오시키고 인현왕후 민씨(閔氏)를 복위하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필사본 외에 후손인 김춘택(金春澤)이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 있으며, 1914년 영풍서관(永豊書館)판과 17년 박문서관(博文書館)판의 활판본이 있고, 1955년 김민수(金敏洙)가 교주(校註)를 달아 《현대문학》에 소개하였다.



유배문학관 앞에서





하하 바위

그래 한 번 웃어 보입시더
젊어진다 카는데 우째 안 웃겠능기요
감자 두 개 거느린 우리 할배
안 그래도 웃음이 살살 나오네예
한 번 보는데 3년 젊어진다카마
내사 안 가고 여기 다리뻗고 그냥 눌러 앉을랍니더.

잠시 휴식

원예 예술촌 뒤 - 다랭이 마을은 못 가도 비슷한 모습

탁 트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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