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승대의 구연서원 및 황산 전통 고가 마을
행전 박영환
2017년 11월 1일(수), 청도문화원 경북 선비 아카데미 회원들이 경남 거창군 위천면 소재 수승대를 찾았다.

구연서원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있으며. 1694년 조선 숙종20년에 지방유림이 요수(樂水)신권(愼權)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구주서당자리에 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뒷날 성팽년(成彭年)과 신수이(愼守彛)를 추가 배향하여 선현의 향사와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 요수(樂水)신권(愼權)선생은 1501년에 태어나서 1573년에 별세 했다고 하며 본관은 거창이고 자(字)는 언중(彦仲) 이며 호(號)는 요수(樂水)이다. 벼슬은 선교랑(宣敎郎= 조선시대 종6품 ) 훈도를 지냈다고 한다.
◆ 석곡(石谷)성팽년(成彭年)선생은 중종35(1940)년에 태어나서 선조27년(1594)에 별세 했으며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창녕이고 자는 이옹이며 호는 석곡으로 안음(安陰)출신이다. 명종19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으로 있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별세하자 학업을 그만두고 오직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였다. 효행으로 천거받아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면 장군을 따라 경상도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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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해설사가 들려주는 '구연서원'>

◆ 신수이(愼守彛)선생은 이재(李縡)선생에게 사사하면서 평생학문에만 전념하였기 때문에 시(詩)에서는 학자(學者)다운 면모(面貌)와 풍모를 느낄 수 있고 자연적인 삶에 대한 자기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펼쳐내었다.


관수루(觀水樓)
구연서원의 문루이다. 그 이름을 지은 조영석은 이 이름은 맹자의 <진심장구편>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하는데 <관수유술(觀水流術)> 즉 물을 보는 데는 그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의 흐름을 보아야 한다. “물은 웅덩이를 가득 채우지 않고는 다음으로 흐르지 않는다.<遷流不息>”는 라는 말을 인용하여 선비의 학문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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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기둥에 대해 문화해설사가 설명을 하고 있다>

누각의 형태는 앞에서 보면 상당히 큰 자연석이 양쪽에 있어 굳이 누각을 세우지 않았더래도 자연적인 석문이 되었을 것이나 건축물을 지었으니 선현들의 풍치감상의 능력을 상상해 볼만하다.
문루아래 기둥은 굵은 둥근 나무를 사용하였고 활주역시 다른 누각에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안쪽에 있는 기둥은 우리의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든다. 이리저리 나이테를 따라 굽어진 나무를 기둥으로 사용했다. 관수루에 오르는 계단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자연석 바위를 딛고 올라서 누각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밖에서 보면 상당히 높은 바위인데, 반해 안에서는 비스듬하게 완만한 경사를 지어 오르기 쉽게 되어 있다.
마당 안에는 구연서원이란 현액이 달려 있는 건물과 비석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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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바위에 새겨진 시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수승대(搜勝臺) 거창에는 영남제일 동천으로 알려진 안의삼동(安義三洞)중 하나인 거북바위, 요수정, 관수루가 있고 구연서원과 원각사등이 있는 이곳을 일러 수승대(搜勝臺)라고 한다. 이부근은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관계로 신라로 가는 백제의 사신들이 수심에 차서 송별하는 곳이어 수송대(愁送臺)라고 불렀고 퇴계이황이 이곳 풍경을 예찬하는 시를 한 수읊은 뒤로 부터 수승대(搜勝臺)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搜勝名新換
‘수승’(搜勝)이라 대 이름 새로 바꾸니
逢春景益佳
봄 맞은 경치는 더욱 좋으리다.
遠林花欲動
먼 숲 꽃망울은 터져오르는데
陰壑雪猶埋
그늘진 골짜기엔 봄눈이 희끗희끗.
未寓搜尋眼
좋은 경치 좋은 사람 찾지를 못해
惟增想像懷
가슴속에 회포만 쌓이는구려.
他年一樽酒
뒷날 한 동이 술을 안고 가
巨筆寫雲崖
큰 붓 잡아 구름 벼랑에 시를 쓰리다.
넘치지 않을 만큼 정이 담긴 시였다. 화답이 없을 수 없었다.
林壑皆增采
자연은 온갖 빛을 더해가는데
臺名肇錫佳
대의 이름 아름답게 지어주시니
勝日樽前値
좋은 날 맞아서 술동이 앞에 두고
愁雲筆底埋
구름 같은 근심은 붓으로 묻읍시다.
深荷珍重敎
깊은 마음 귀한 가르침 보배로운데
殊絶恨望懷
서로 떨어져 그리움만 한스러우니
行塵遙莫追
속세에 흔들리며 좇지 못하고
獨倚老松崖
홀로 벼랑가 늙은 소나무에 기대봅니다.
퇴계의 시와 나란히 새겨진 글은 역시 거창이 자랑하는 선비 갈천 임훈(葛川 林薰, 1500~1584)의 시다.
花滿江皐酒滿樽
강 언덕에 가득한 꽃 술동이에 가득한 술
遊人連袂謾紛紛
소맷자락 이어질 듯 흥에 취한 사람들
春將暮處君將去
저무는 봄빛 밟고 자네 떠난다니
不獨愁春愁送君
가는 봄의 아쉬움, 그대 보내는 시름에 비길까.
거북바위에는 짤막한 전설도 얽혀 있다. 장마가 심했던 어느 해, 불어난 물을 따라 윗마을 북상의 거북이 떠내려왔다. 이곳을 지키던 거북이 그냥 둘 리 없어 싸움이 붙었는데, 여기 살던 거북이 이겼음은 물론이다. 그때의 거북이 죽어 바위로 변했으니 거북바위가 바로 그것이라 한다. 옛날 이곳을 범한 거북을 물리쳤듯 바위가 된 거북은 오늘도 이곳을 지키는 지킴이 구실에 어김이 없다는 얘기다.



수승대는 전쟁 중이다
나무는 나무끼리 서로 푸르다, 붉다 색깔을 다투고
물은 물끼리 앞서거니 뒤서거니 맑음을 타툰다
백제와 신라의 사신이 근심을 다투어 수송愁送인가 했는데
경관의 다툼이 천하의 명승이라 수승搜勝이라 고친 퇴계
뒷날 한 동이 술 차려놓고 큰 벼랑에 구름 그리려 하니
숨어서 수양하던 요수 신권과, 지팡이를 짚고 짚신을 끌던 갈천 임훈이 다투듯 화답하다
거북바위는
시인묵객의 창보다 더 무서운 붓끝의 전장
문중은 문중끼리, 제자는 제자끼리 시와 이름을 하나라도 더 새기겠다는 감회의 다툼
지금도 끝나지 않는 싸움, 벼룻물 짙게 갈아
좀더 가까이 다가가리라 전쟁을 벌인다
그래 관수루에서 보았는가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다음으로 흐르지 않는 것을
수승대 그 많은 다툼, 결국 웅덩이를 채우던 일이었구나.
(박영환 '수승대')



요수정(樂水亭)
이 정자는 신권이 제자들에게 강학을 하던 장소이다. 요수(樂水)는 <논어>의 <옹야(雍也)편>에 나온“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는 글로 옛 선비들이 심산유곡의 산수를 즐기며 늘 마음에 두었던 문구다> 요수정은 1542년 구연재와 남쪽의 척수대 사이에 처음 건립되었으나 임란왜란때 소실되었고 중건한 뒤 다시 수해를 입어 1805년 현 위치로 이건했다.

요수정 입구에는 '문화재를 보호한 비석'이라는 이름의 안내판이 있다.
태풍이 와서 주변의 나무들이 쓰러질 때 이 비석이 있었기 때문에 넘어지던 소나무가 지붕을 덮치지 않고 지붕이 무사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수승대에서 건너편 마을길을 따라가면 황산마을에 이른다. 거창 신씨들의 씨족마을이다. 마을 뒤편의 야트막한 동산에 오르면 마을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지금은 여러 고가들이 민박으로 되어 있어 고가체험을 할 수 있다.




*참고
. 거창 구연서원과 수승대, 박윤제, 2017 경북선비아카데미 교재, 청도문화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거창군 문화해설사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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