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당회 청도 탐방/ 2013. 6.22(토)/ 청도 일원/ 행전
은당회
행전 박영환
고향 수야 마을은 4리까지 있는데 그 중에 수야 1리와 2리에서 태어나 같이 자란 죽마고우들이 40여 년 전부터 은당회란 모임을 조직하고 부부들이 같이 모이고 있다. 모임을 시작할 때 회명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의논할 때, 수야 2리의 은행나무와 수야1리의 당산나무에서 첫 글자를 따서 붙이면 어떻겠느냐고 내가 제의를 하여 친구들이 좋다고 동의를 한 것이다.
사실 은행나무는 15대조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이고 당산나무는 마을의 당산신을 모시는 나무이기에 두 나무는 마을을 상징하고 있다. 당산나무는 음력 정월 달에 마을에 평화와 강녕을 빌던 곳이다. 왼쪽 새끼를 꼬아 금귀줄을 만들고 깨끗한 황토 흙을 뿌린 다음, 부정이 없는 사람(상을 당했다든지, 집에 액운이 없는 사람)을 제주로 뽑아 제사를 올렸다. 은행나무는 당산제 같은 것은 드리지 않았지만 고향마을에 뿌리를 내리게 한 어른의 체취가 있는 나무이라 당산나무 못잖게 성스러운 나무이다. 두 나무 모두 500년 정도 된 여러 아름 되는 큰 나무로 어린 시절 추억과 꿈이 배어 있는 곳이다. 그곳에 모여 놀이를 많이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책보따리를 던져 두고 숨바꼭질이나 구슬치기, 땅따먹기를 했으며 한가위 때는 굵은 가지에 그네를 매었다. 그네 줄을 실하게 매려면 짚이 많이 들어갔는데 집집마다 다니면서 몇 단씩 얻어오던 기억이 새롭다. 정월 대보름때는 마을 농악패가 신나게 풍악을 울리며 나무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 때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어깨춤을 추었다. 2리에 사는 나는 은행나무가 더 추억이 많다. 정이 들었던 우리집 개, 워리를 팔아 버렸을 때 눈물을 흘리며 녀석이 잡혀간 먼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곳도 이곳이었다. 그때 애꿎은 나무껍질만 모질께 뜯어내었다. 여드름을 툭툭 짤 때 서리 모의를 하던 곳도 이곳이었다. 마이크가 없던 시절, 마을에 위급한 상황(불이 났다든지, 아니면 세무서 직원들이 술을 초러 올 때 등)을 목청 좋은 재궁지기가 알리던 곳도 이곳이었다.
회원은 밀양 박씨 7명 고령 김씨 2명 합 9명인데 이상하게도 일부러 그렇게 맞춘 것도 아닌데 공통점이 많았다. 우선 모두 장남이란 것이다. 그리고 모두 같은 항렬 '영(永)) 자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건 박 씨만 그런 것이 아니고 고령 김 씨들도 '永'자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생일로 형님 아우로 삼고 있다.
나이는 갑신생이 7명, 을유생이 2명이다. 어느덧 고희에 이른 것이다. 모두 일제 말기나 해방초기 어려운 시절에 태어나 고생도 많이 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지금까지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이다.
이날 모임이 마침, 갑신생들의 고희 기념 성격을 지니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외국이나 아니면 국내라도 먼 곳에 가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오히려 고향을 돌아보며 우의를 다지는 것도 의의가 있다는 생각에 청도지역을 택한 것이다.
신도에 있는 새마을 발상지 기념관에서 때에 절은 지난날을 보았다. 초가삼간의 가난을 보며 정말 많이 발전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70년대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새로 생긴 유치원 사진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 중에 하의를 벗고 체조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요즈음 같았으면 매스컴이 가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저 사람도 벌써 지명의 나이에 이를 것이다. 대통령과 악수를 하는 할머니, 마을 공동 사업을 벌이느라고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나르던 저 분들 대부분 이미 고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고생한 덕분에 오늘이 있는 것 같다.
운강고택과 만화정은 우리 직계 조상은 아니지만 15대조 할아버지 병재공의 큰 형님 소요당이 살던 터에 들어선 집이다. 집 앞의 냇물은 언제나 새롭게 흐르지만 우리는 가끔 어제 물과 오늘의 물이 같은 물인 양 생각한다. 정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늘 어제 그 사람 같지만 세월은 또 다른 사람을 거기에 앉게 한다. 그러면서 정자도 다른 목소리를 담는 것이다.
삼족대는 삼족당 김대유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며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다. '三足'이란 세 가지에 만족함이다. '壽, 榮, 食'이라 했다. 70을 살았고, 벼슬도 해봤고, 먹을 것도 있으니 '삼족'이란 것이다. 그럴 만도 한데, 그렇게 만족하는 것이 쉬운 일이던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항상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 마음 아니던가. 임금이 불러도 벼슬을 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병을 얻었던 일화가 큰 교훈으로 자리 잡는다.
저녁, 둘러앉아 담소를 나눌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태어날 때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다. 일제 말기나, 아니면 해방둥이니 지극히 어수선한 시기에 배도 많이 곯았다. 그래도 잘 견디어 일흔까지 나름대로 건강을 지키며 살고 있고 자식들도 별로 애먹이는 사람 없이 제 밥벌이하고 있으니 참 다행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가만히 보니 모든 부부가 처음에 짝지어진 그대로 살고 있었다. 슬쩍 농담을 했다. 누구는 살면서 이혼도 잘 하더만 우리는 하나같이 그 흔한 이혼 한 번 못해보고 일편단심 한 여자, 한 남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또 누구는 고향을 잘도 버리고 잘 잊어버리더만 우리는 어릴 때도 수야이고 늙어서 수야를 잊지 못하고 끝내는 고향의 흙이 될 것 같다. 지금까지 벗어나지 못한 것, 나이 들어서는 더 못할 것 아닌가. 이왕 가기로 한 길 딴 마음 먹지 말고 해온 대로 부부가 해로하면서 고향땅에서 재미있게 살아갑시다.
아마도 우리는 태생적으로 공통점을 많이 지닌 것 같다. 술잔을 높이 들고 "위하여"


새마을 운동 이전의 시골마을

새마을 발상지 기념관 방문

새마을 여인상 제복


옛날 방앗간에서

신거역 대합실

신거역 운임표 및 열차 시각표

대통령 전용열차(모형)

대통령 전용열차 내

박정희 대통령과함께

운강고택 및 만화정

삼족당 김대유 선생이 학문을 연마하며 후학을 가르쳤던 삼족대

방음동 새마을 동산


운문산 계곡 팬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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