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전/ 2014년 7월 8일(화)/ 행전 박영환
2011년 5월에 방문한 이래 두번째 찾은 곳이다. 역사가 숨쉬는 곳 언제 찾아도 좋다. 그래서 이렇게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가 보다. 마침 새로 선출된 시장님도 이곳에 나와 방문객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니 더더욱 전주가 따뜻하고 경기전이 성스럽다.
태조 이성계의 본관은 전주 이씨이나 조상들이 뿌리를 내려 살았을 뿐 당신께서 이곳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을 둘러보면서 당신의 영혼은 이곳에서 오래 편히
쉬고 있는 것 같았다.

경기전 입구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에 있는 누전(樓殿).
경기전
사적 제339호. 1410년(태종 10) 어용전(御容殿)이라는 이름으로 완산(完山)·계림(鷄林)·평양 등 3곳에 창건하여 태조의 영정을 봉안했고, 1442년(세종 24) 그 소재지마다 이름을 달리하여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集慶殿), 평양은 영종전이라 했다. 관원으로 영(令 : 종5품) 1명, 참봉(參奉 : 종9품) 1명을 두었다. 임진왜란 때 경기전은 소진되었으나 영정은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에 옮기어 보존할 수 있었다.
현재의 건물은 1614년(광해군 6) 관찰사 이경동(李慶仝)이 다시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중건한 것이다. 건물의 구성을 보면 본전은 정면 3칸, 옆면 3칸으로 되어 있고, 본전 외 창고를 위시하여 여고(輿庫)와 실록각(實錄閣)이라고 하는 문고(文庫)가 있다. 본전은 남향한 다포식(多包式) 맞배집 건물로 높게 돋우어 쌓은 석축 위에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세웠는데 건물 안의 3번째 기둥렬에 고주(高柱)를 세우고 그 가운데에 단(壇)을 놓았다. 이 단의 양옆에는 일산(日傘)과 천개(天蓋)를 세웠다. 본전 앞의 헌(軒)은 본전보다 1단 낮게 쌓은 석축기단 위에 4개의 기둥을 세우고 2익공식(二翼工式) 포작(包作)을 짜올린 맞배지붕 건물이다. 본전과 헌의 구성은 정자각(丁字閣) 구성과 같다.(다음, 백과사전에서 인용)
수문장

하마비
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이 비 앞을 지날때는 누구든 말에서 내리라는 뜻. 이 비는 왕, 장군, 벼슬이 높은 성인들의 태생지나 사당앞에 세워졌으며 그 앞을 지날 때 경의를 표하라는는 뜻을 담고 있다.


방문객들과 인사를 나누는 전주시장

홍살문(紅箭門)
홍살문의 원음은 홍전문(紅箭門)이다. 붉을 홍, 화살 전, 문 문. 한마디로 붉은 화살로 된 문이란 뜻이다.
그 구조를 보면 홍살 뿐만 아니라 가운데에는 삼지창(三枝槍)까지 만들어 놓았고 삼지창의 목 부분에 음양을 뜻하는 태극(太極)이나 삼태극(三太極), 불교의 만(卍)자 그리고 단청문양을 그려넣기도 하였다.
즉 홍살(화살)과 삼지창(창)은 쳐들어오는 사악한 기운을 막아내기 위한 풍수적 무기로서 그 의미가 있다 하겠다

경기전 부속채

출입문의 가운데 통로는 신도라 하여 보통 사람은 걸어다닐수 없는 곳이다. 왕과 신들만이 걸음할수 있는 곳이다. 일반인들은 해뜨는 방향인 동쪽문(오른 쪽)으로 들어갔다가 해지는 방향인 서쪽(왼쪽)으로 나온다.


정전

천정

태조 어진

원 주인은 소나무인데 능소화가 기생하고 있다.

담장 앞에 무성한 대나무

해설사가 배롱 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롱나무
행전 박영환
전주 경기전에서 어진 박물관으로 가는 길목에
배롱나무 한 그루 있다
해설사 여자 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의미 있는 웃음을 지었다
마침 어린 아이 한 명도 같이 듣고 있었는데
너는 귀 막아 하면서 들려주는 말
"이 나무는 안방 앞에 심으면 남자들이 좋아졌지요"
무슨 그런 뚱딴지 같은 말, 일행들이 의아해 하자
"이놈이 홀랑 벗었잖아요"
그러고 보니 배롱나무는 껍질이 없구나
"그래서 안방마님이 바람이 나서 절로 집을 나가니 남자들이 절로 새 마누라 얻게 되었잖아요"
얼마 전 고향 마을 집안 형님이 안방 앞에 배롱나무 한 그루 심는 것을 보았다
당장 가서 만류하고 나도 심지 않아야겠다
형님이나 나나 이제는 봄날이 간 신세
새 마누라 얻기는커녕 홀아비 되기 십상 아닌가.

100년이 넘은 매실나무

전주사고(史庫)

어진 박물관


태조 관련 유물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한자어 그대로 해와 달 앞의 다섯봉우리를 그린 그림으로 하늘에서 흰 달과 붉은 해가 좌우로 나뉘어 떠 있고,
그 아래로 다섯개의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그리고 산 아래로 격랑을 일으키며 출렁이는 파도가 나타나고, 화면의 좌우 양 쪽 끝으로는 붉은 몸통을 드러낸 무성한 소나무가 짝을 이루며 서있고 한쌍의 폭포가 양쪽으로 그려져 있다.
이 상징물들은 자연세계에서 선별된 것으로 이런 구성을 가진 작품을 조선시대에는 오봉도, 요즘에는 해와 달의 상징을 더하여 일월오봉도 또는 일월오악도라고도한다.
해와 달은 음양을 상징하며, 다섯봉우리는 오행을 상징하며, 이런 음양오행들은 곧 우주를 의미하고 이런 우주의 생성과 변화 음양오행을 대변하는 상징물들을 주관하는 그림의 주인공인 국왕은 곧 우주의 주재자 또는 우주의 주재를 대신하는 존재와 같은 의미를 부여받을수 있었다.

봉선


태조어진


세종 어진


영조 어진


정조 어진


철종 어진


고종어진


순종어진


철종, 고종, 순종 어진 앞

세종, 영조, 정조 어진

조경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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