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이서면 금촌리 금호 서원 등 재실
행전 박영환
2016년 12월 14일(수), 청도군 이서면 금촌리를 찾았다. 금촌리는 고향과 이웃마을이기에 비교적 자주 찾는 곳이다. 옛날 중학교에 다닐 때는 우리집에서 팔조령고개를 넘어서 대구로 가려면 꼭 이 동리를 지나가야 했다. 금촌못은 예나 지금이나 물빛이 푸르다. 특히 금촌못에서 상당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에 자리잡은 성황당은 잊을 수 없다. 지금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지만 아직도 그 흔적은 약간 남아 있을 것 같다.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나무에 새끼줄이며 색색으로 붙인 천조각이 펄럭였다. 길손들은 지나갈 때마다 소망을 담아 돌을 하나씩 얹었는데, 나도 그때 열심히 빌었던 것 같은데... 아마 그 속에 금촌리에 사는 그 아이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삼성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학산리로 내려가고, 또 한 줄기가 고철리로 내려가는 가운데 생긴 들판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흔히 금촌못이라고 불리는 이못의 본래 이름은 '풍양지'인데 청도군 내에서도 상당히 큰 못에 속한다. 마을의 앞산은 장군독이다. 장군만이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하는 항아리처럼 생긴 큰 바위에서 연유한 이름이다.

금호서원(琴湖書院)
◯관리문중: 재령이씨(載寧 李氏)
◯소재지: 청도군 이서면 흥선리 44번지(청도군 이서면 삼성산길 106-58)
◯건물구조: 대월산(對月山)을 배경으로 앞쪽 경관이 탁 트인 풍양지를 바라보며 서북향으로 좌정했다.
시덕문(施德門) 현액이 걸린 외삼문(外三門,출입문, 고방2)을 들어서면 강당인 충의당(忠義堂)이 있는데 방2, 대청2의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며 양측 온돌방의 전면에는 퇴칸을 두었으며 방과 마루 사이에 사분합들문을 설치했다. 그 아래 각각 3칸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다. 강당 뒤에는 별도의 영역에 내삼문(內三門)인 상덕문(尙德門) 안에 연화와 봉두로 장식한 맞배지붕 3칸 현충사(賢忠祠)가 있다. 중문을 따로 두어 평소의 출입문으로 삼고 있다. 전체배치는 2단으로 조성된 대지에 외삼문과 강당, 사당을 일축선상(一軸線上)에 두고 강당의 좌우에 동·서재를 둔 전학후묘형식(前學後廟形式)이다.
강당에 ‘충의당’, ‘선무원종공신 고유문’, ‘금호서원사기(琴湖書院祠記)’, ‘금호서원 기’ ‘금호서원 상량문’ 현판이 있다. 입구에 금호서원을 알리는 큰 표석이 세워져 있고 ‘금호서원’ ‘식성군 문적’, ‘식성군 이운룡 선무공신 교서외 관계문서’에 대한 안내판이 있다. ‘식성군 이운룡 장군 사적비’,‘이백신 선생 비’, ‘금호서원 연혁비’, ‘금호서원 문화사업 추진위원회 건립기념비’ 등이 세워져 있다.
◯배향인물은 동계(東溪) 이운룡(李雲龍)과 향산(鄕山) 이백신(李白新)이다.
1)동계 이운룡(1562~1610)의 본관은 재령(載寧)이며 자는 경현(景見)이다. 아버지는 남해현령 몽상(夢祥)이며 1585년(선조 18) 무과에 올라 1587년 선전관에 임명되고, 1589년 정월에 옥포만호로 임명되었다. 1592년 5월 7일, 원균이 인솔한 경상도 수군과 이순신이 지휘하는 전라도 수군이 합세해 거제도 동쪽 옥포양(玉浦洋)에서 적선을 맞아 싸웠다. 이 싸움에서 그는 선봉장으로서 아군을 진두지휘했다. 이 결과 적선 50여 척을 분소시키는 큰 전과를 거두었는데, 이것이 임진왜란 최초의 승전인 옥포해전이다. 그 뒤 사천·진해·한산·안골포·부산해 등 여러 해전에 참가, 진두에서 용감히 싸워 적군의 진출을 막았다. 1596년 이순신의 천거로 경상좌수사에 승진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경상도의 수군을 주도하였다. 전란 뒤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책록 되고, 식성군(息城君)에 봉해졌다.
1605년 내직으로는 도총부부총관·비변사당상관을 지내고, 외직으로는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어 국가의 중요 군직에 복무하면서 많은 공적을 남겼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금호서원(琴湖書院)에 이어 의령의 기강서원(岐江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식성군실기≫ 2권이 있다.
2)향산 이백신(1539년,중종 34-1604년,선조 37년)은 본관이 재령이며 평소 도량이 넓고 강직한 성품으로 ‘대장부 집에 들어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세상에 나아가서는 임금에게 충성한 연후에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해오던 그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라가 망했는데 어찌 구차스레 살기를 생각하랴’ 하며 분연히 창의했다. 전쟁 중 불행하게도 아들이 사망하게 되었는데도 잠시 들러 장례를 치른 뒤 뒷일을 며느리에게 부탁하고 급히 호남(湖南) 금성(金城) 진중으로 달려가 큰 전공을 세웠다. 이에 나라에서 그 훈공을 기리어 어모장군훈련원첨정(禦侮將軍訓練院僉正) 벼슬을 내리어 포상하였다. 전란이 끝난 뒤에는 다시 선비의 본분으로 돌아가 향우 사우들과 힘을 모아 향교를 수축하고 향약을 만들어서 규모를 세우고 풍속을 잡는데 힘쓰고 후학들을 계도하는데 힘썼다.
◯연혁: 처음에는 이운룡의 출생지인 매전면 명대마을에 상충사를 창건하여 영정을 봉안하였으나 1814년(순조 14년)에 류량 등 사림 400여 명이 발의하여 이서면 금촌동에 금호서원을 창건하였다. 그뒤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년)에 훼철되고 강당만 대월산으로 이건 효충사라 하였다. 1974년 중건하였는데 1999년 화재로 강당인 충의당이 소실되었다. 국가문화재를 소장한 서원이므로 2001년 국고 지원을 받아 중수하였다.
1994년 녹훈 교서와 교지가 국가 문화재 제1212호 지정되고 또 경북 지방 문화재 제142-2호로 그리고 서원건물도 지방문화재 자료 제308호로 지정되었다. 경내에 문화재 지정 기념비가 있다.












서원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양지


연호정(蓮湖亭)
○소재지: 청도군 금촌리 421번지
○건축연대: 1977년
○건물구조: 연호정(목조와가 정면 5칸, 측면 1칸), 대문(1칸)
○관리문중: 재령 이씨
○배향 인물: 이이(李栭) 재사이다. 이이의 자는 이섭(而涉)이다. 통정대부 중추원 부사였으며 향산 이백신의 증손이고 문산공의 계재이다. ‘百忍堂’현판이 ‘연호정’과 나란히 붙어 있어 ‘백인당’이라고도 부른다. 이백신의 유훈인 ‘以忠報國’, ‘以孝事親’, ‘以敬養老’, ‘以德施人’의 현판, ‘백인당 상량문’, ‘백인당 기’, 가 있다. 동리의 경로당을 겸해서 사용하고 있다.





지암서당(砥巖書堂)
○소재지: 청도군 이서면 금촌리 416번지
○건축연대: 1907년
○건물구조: 목조와가 정면 5칸, 측면 1칸, 하당(3칸), 대문(3칸)
○관리 문중: 재령 이씨
○배향 인물: 지암(砥岩) 이결(李결)이 후진 양성을 위해 강학하던 서당이다. 향산(鄕山) 이백신(李白新)의 아들이다.
○현황: ‘현용재’, ‘지암정’,‘지암정기’, ‘상량문’, ‘지암정 중수기’, 등 현판이 마루 벽에 걸려 있다. 마당은 시멘트 처리됨.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며 제사를 지내고 후손들의 충효교실로 활용한다. 현용재라고도 부른다.




경모재(敬慕齋)
○소재지: 청도군 이서면 금촌리 435-1
○건축연대: 1965년
○건물구조: 경모재(정면 4칸, 측면 1칸), 대문채(3칸), 중문
○관리문중: 밀양 박씨
○배향 인물: 경모(敬慕) 박기열(朴基烈)의 재사이다. 그의 자는 원보(元甫)이며 밀직 부원군 박중미(朴中美)의 12세손으로 경산에서 이거하여 정착했다.
○현황: 시멘트 블록 담장을 둘렀고 동백나무를 비롯한 정원수로 조경되어 있다. 문중에서 조상을 기리는 뜻으로 경모 장학회를 설립하여 해마다 4년제 대학교에 입학하는 문중의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여 향학열을 북돋우고 있다.


용호사(龍湖寺)
○소재지: 이서면 삼성산길 106-89
○소속: 태고종
○설립: 1959년
○주요건물: 대웅전, 삼성각, 요사채, 식당
○활동 상황: 풍양지 안, 금호서원 옆에 있다. 신도수 130명 정도이고 대지는 3300㎡이다.

'청도가 좋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청도군 이서면 흥선리의 고명재, 고례재, 흥인당 (1) | 2022.11.29 |
|---|---|
| 청도 각북 벚꽃길 (1) | 2022.11.29 |
| 청도문화연구회, 가슬갑사 추정지 탐방 (1) | 2022.11.29 |
| 청도문화연구회 창립총회 (0) | 2022.11.29 |
| 용화사 (0) | 2022.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