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은재(慕隱齋)가 있는 청도읍 음지리 / 2016년 11월 23일(수)/ 행전 박영환


○위치: 청도군 청도읍 음지리 387번지
○건축연대: 2007년
○건물 구조: 목조와가 정면4칸 측면 2칸
○관리 주체: 청주 한씨
○건물 및 배향인물 연혁
청도읍 한재 음지 마을 뒤, 철마산 기슭에 위치한 청주인 한계오(韓繼五) 선생의 재사이다.
원래 건축 연대는 1790년에 목조 와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창건되었으나 2006년 3월의 화재로 본각과 비각 및 사랑(舍廊)에 소장했던 유적 등이 전소되어 후손의 성금 및 문중 농지를 매각 충당하여 재각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한계오 선생은 태위 한공란(韓公蘭)선생의 21세손으로 호는 남은이다. 1572년(선조 5년)에 태어나서 1588년(선조 21년)에 생원, 진사에 급제하고 1589년 (선조 22년)에 승정원 주서에 오르고 1590년(선조 23년)에 정여립의 난에 공을 세워 사헌부 지평에 오르고 임진왜란 때는 진주 부사로 재임하면서 부독사로 출전한 훈공으로 공조정랑에 올랐다. 후에 벼슬에 물러나 이곳 한재[大峴]에 입향 은거하다가 62세로 일생을 마쳤다.


디지털 향토문화대전에는 음지 마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철마산성 아래에 북동향으로 위치해 이름 그대로 음지이다. 우리말로 응달 마을이라는 뜻이다. 개울 건너편에 있는 양지 마을과 반대되는 마을이기도 하다.
[명칭 유래] 음지리를 넘어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양지 마을 쪽에서 보면 작은 산이 앞에 가로막혀 산을 넘어서 조성된 마을이라고 해서 넘어마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동네가 철마산 너머 남쪽 산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언젠가 왜란이 일어나 동네가 화를 당할 무렵, 천마(天馬)을 타고 하늘을 날아가던 귀인(貴人)이 천마가 병이 들어 잠깐 쉬고자 내려왔다가 말을 잘 치료해준 동민(洞民)들의 착한 마음에 감복하여 동네를 통째로 산 너머로 옮겨 난을 피하게 했다고 한다. 이때 이 마을이 산을 넘어왔다고 하여 ‘넘으마’라고 한다는 것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몇 집을 제외하면 길에서는 마을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안쪽 깊숙이 숨어 있는 마을이다. 그래서 산 너머에 있다고 해서 넘어마라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청도군 하남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이전에는 음지리가 있는 골짜기 전체를 대현동이라 했다. 행정 구역 개편 때 네 개의 법정동으로 바뀌었는데 양지 쪽에는 양지동, 반대편인 음지는 음지동, 그리고 평평한 곳은 평지마라고 했다. 양지와 평지를 합해서 평양리라고 했고, 이곳은 그대로 음지동이라 하여 대성면에 편입되었다. 1940년 대성면이 청도면으로 개명하면서 청도면 음지동이 되었고, 1949년에 청도면이 청도읍으로 승격하면서 청도읍 음지동이 되었다. 1988년 음지동에서 음지리로 개명하였다.
[자연 환경] 철마산 아래 형성된 마을로서 일찍이 꽃돌이 많이 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철마산 비탈진 산기슭에 위치하며 서쪽과 남쪽은 화악산 능선에 막혀 있어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산촌이다.
[현황] 2012년 10월 현재 면적은 2.18㎢이며, 총 63가구에 135명[남자 65명, 여자 7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청도읍 초현리, 서쪽과 북쪽은 청도읍 평양리, 남쪽은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옥산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큰마와 넘어마 등의 마을이 있다. 경작지가 별로 없지만 지하수를 개발해서 미나리 단지를 조성하여 경제 작물로 하고 있다. 마을 내에는 남동∼북서 방향으로 지방도 902호선이 지난다. 청주 한씨(淸州韓氏)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동네 입구에는 이 동네에서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의 영세불망비 다섯 기가 길가에 세워져 있고, 큰 바위에 ‘고석종 영세불망’이라고 각자(刻字)해 놓은 것이 있는데 어떤 일로 해서 새겼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다. 뒷산에는 철마산성이 있다.
한편 청도군지(1991)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음지리(陰地里)
온 산이 대부분 암석인 철마(鐵馬)산에 있는 마을이다. 비탈진 산기슭에 취락된 마을로 전형적인 산촌풍경이 물씬 풍기는 곳이기도 하다.
북향된 마을이라 동명도 음지라 불리고 있으며 천마(天馬), 선녀(仙女), 옥단춘초(양애-陽碍) 등 일련의 산촌 전설이 다른 산촌과 비슷한 점을 간직하고 있다. 삼면이 산이다 보니 산을 넘나드는 사이에 형성된 일종의 심리적 작용이 월촌(越村), 월마(越馬) 등의 유래가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임란시 철마산성에서 항전한 구전이 있는데 1600년대 사람이 이주했다는 사실밖에 알 수가 없다. 성이 있고 마을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나 문헌 근거가 없다.
동명은 음지와 건너편 마을은 양지로 자연 그대로다. 북향한 음지라고 동명도 그대로 붙인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음양설에 입각한 상대적 동명인지도 모른다.
자연 부락으로 월촌(越村-넘은마, 넘은마을)에 관한 구전도 있으나 산능선 저쪽에서 이쪽으로 옮긴데 대한 미화가 아닌가 싶다.
옥단초(양애-陽碍)
대현 일대에 자생하는 숙근(宿根)으로 1년초이다. 어린잎은 식용으로 할 수 있고 뿌리는 사방으로 뻗지 않고 한쪽으로만 뻗어가는 습성이 있다. 이 풀은 다른 곳에 심으면 고사되는 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