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지역 서원•재실 탐방(3) 승전의 북소리가 들리는 금호서원(琴湖書院)

청도지역 서원재실 탐방(3)

         승전의 북소리가 들리는 금호서원(琴湖書院)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2019년 7월 25일(목) 청도신문

 

  이서면 금촌리 동편 풍양지 안에 있는 금호서원을 찾았다. 저수지 둑이 진입로인데 둑이 끝나는 지점에 대월산(對月山)을 배경으로 푸른 물결 넘실대는 금호를 바라보며 서북향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재령이씨 지암종중(載寧 李氏砥巖宗中)이 관리하고 있는 이 서원은 외삼문과 강당, 사당을 일축선상(一軸線上)에 두고 강당의 좌우에 동·서재가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 구조이다.

배향 인물은 (東溪이운룡(李雲龍) 장군과 향산(鄕山이백신(李白新) 선생이다 이운룡 장군(1562~1610) 1585(선조 18) 무과에 올라 선전관에 이어, 1589년 옥포만호에 임명되었다. 1592 5 7, 원균의 경상도 수군과 이순신의 전라도 수군이 합세하여 거제도 동쪽 옥포양(玉浦洋)에서 적선을 맞아 싸웠다. 이 때 선봉장인 이운룡 장군은 적선 50여 척을 섬멸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이것이 임진왜란 최초의 승전인 옥포해전이다. 그 뒤 사천·진해·한산·안골포·부산해 등 여러 해전에서도 진두에서 적군을 막았다. 1596년 이순신의 천거로 경상좌수사에 오르고 전란 뒤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책록 되고, 식성군(息城君)에 봉해졌다.

 

 

 

1605년 내직으로는 도총부부총관·비변사당상관을 지내고, 외직으로는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어 많은 공적을 남겼다. 뒤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식성군실기 2권이 있다.

또 한 분 배향 인물인 향산 이백신(1539-1604) 선생은 재령이씨(載寧李氏)가 오백여년 간 세거하고 있는 청도 금촌리에서 태어났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라가 망하게 되었는데 어찌 구차스럽게 살기를 생각하랴 하면서 적진에 뛰어 들었다.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고향의 아들이 갑자기 급사(急死)한 불행을 겪었지만 잠시 돌아와 장례를 치른 즉시 뒷일을 며느리에게 부탁하고 다시 의병의 진중인 금성(金城 : 전남 나주)으로 달려갔다. 전란이 끝났을 때 나라에서 어모장군 훈련원 첨정(禦侮將軍 訓鍊院 僉正)을 내리고 선무원종공신으로 포상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청도 향중 사우들과 힘을 모아 향교(鄕校)를 수축하고 1599년에는 향약(鄕約)을 만들어 풍속을 바로 잡는데 힘쓰고 후학들을 계도하였다.

금호서원은 식성군 태생지인 청도 매전면 온막리의 가조(상충사)에서 시작되었다. 뒤에 가조가 퇴락하여 순조14(1814) 식성군의 방손이 많이 거주하는 이곳 이서면 금촌리에 서원을 건립하여 영정. 교서. 교지. 등을 옮겨왔다. 그 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71(고종 8)에 훼철되었다가 1960년 다시 복원하였다.

1994년 녹훈 교서와 교지가 국가 문화재 보물 제1212호 지정되고 또경북 지방문화재 142-2호로그리고 서원 건물도 지방문화재 자료 제308호로 지정되었다.

 

 

 

시덕문(施德門) 앞 풍양지를 바라보며 호령이란 제목으로 몇 줄의 글을 올렸다.

 

이곳에 오면 옥포해전의 불길이 보인다

승전의 북소리와 감격의 눈물이 보인다

파죽지세로 몰려오던 왜적 앞에

누구는 싸우다가 힘에 부쳐 쓰러지고

누구는 겁에 질려 도망을 해도

내 나라 내 땅을 한 치도 내어줄 수 없다고

당당히 맞섰던 선봉장

장군의 큰 호령에 칼날이 번쩍일 때마다

왜적은 불길 속에 휩싸여 바다 속 고기밥이 되었다

두려운 것은 목숨이 아니고

나라를 잃는 것이라던

그 붉은 충정

장군은 오늘도 겨레의 교훈이 되어

바다 빛을 닮은 푸른 금호를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