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도가 좋다

적천사 (磧川寺)

   적천사 (磧川寺)

 

 

                                                                          행전 박영환

 

  2011년 10월 22일 오후 경북 청도군 청도읍 원리 981, 적천사를 찾았다. 청도역에서 밀양쪽 국도로 내려가니 원리 청년회에서 세운 마을 표석 옆에 적천사가 우측 2.5킬로미터 지점에 있다는 안내판이 있었다. 

  경부선 철로 밑 터널을 지나 조금 더 가니 원리 마을이 나타났다. 네비게이션이 있었지만 조금 헷갈리는 길이 있어 마을 주민에게 길을 물으니 동리 안길을 지나 곧장 가라고 했다. 감이 계절의 꼬리를 물고 붉게 물든 길을 얼마간 올라갔다. 네비게이션이 목적지 주변에 도달하여 안내를 중지한다고 했다. 그런데 사방을 둘러봐도 절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물으려 해도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두리번거리며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데 마침 차 한대가 내려와서 손을 들고 물으니 아직 한참 더 가야 한다고 했다. 

  다시 차를 몰았다. 길이 녹록하지 않았다. 차 두 대가 비켜가기 힘든 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당히 가파른 길이 나타났다. 눈이 오는 겨울철에는 매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에 우람한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한 절이 보였다. 

   

 

  화악산(華岳山) 중턱에 있는 적천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 말사이다. 적천사는 신라 문무왕 4년(664) 원효대사가 수도하기 위해 세운 것인데 처음에는 토굴 형태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왕의 셋째 아들 심지왕사가 중창했으며 고승 혜철 등이 수행했다. 그 뒤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명종 5년(1175) 크게 고쳐 지었는데 당시 참선하는 수행승만 해도 5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지눌이 고쳐짓기 전에 이 절에 많은 도적떼가 살고 있었는데 지눌이 가랑잎에 범 호(虎)자를 써서 신통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도적떼를 쫓아냈다는 전설도 전한다. 당시에 산내 암자로는 도솔암, 은적암, 백련암, 옥련암 등이 있었다.

  또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되어 조선 현종5년(1664) 왕의 하사금으로 중수하였는데 이때 사천왕상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숙종20년(1694) 태허스님이 크게 중창하여 큰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의병들이 이 절을 중심으로 활동하자 관병들이 이 절의 누각과 요사채 일부를 소각시켰다. 외적에 의해 탄 것이 아니고 관병에 의해서 탔다니 씁쓸하다.

 

 

   천왕문 양쪽에 사천왕상이 있다. 사천왕은 수미산(須彌山) 중턱에 살면서 동서남북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다.   

 

 

 

 

  이곳 사천왕상은 몇 조각의 나무를 이어서 만들었는데 높이가 3.4m∼3.8m로 상당히 큰 편에 속한다. 각각 비파·칼·탑·여의주 등 가지고 있다. 그런데 발로 악귀를 밟고 있는 데도 험상궂거나 분노하는 표정이 아니고, 오히려 웃음까지 짓고 있는 익살스런 모습이어서 푸근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조선 숙종 16년(1690)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무차루 - 쉽게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이름이었다. 알고 보니 막힘이 없는 경지란 뜻으로 '무차루(無遮樓)라고 했다고 한다. 앞도 막히지 않고 뒤도 막히지 않으니 불법의 도가 끝없이 펼쳐질 것 같다. 

   무차루 편액에는 인각대사가 적천사에 대해 읊은 시구가 있다. 

"숲 너머 산에서 종소리 멀리 들려오니 푸른 봉우리에 절간이 있겠구나. 나무가 빽빽하여 문 두드리는 달빛 가리고, 골짜기 비어서 문 두드리는 지팡이 소리에 대답하네. 물은 흰짚을 깔아놓은 듯 돌에 흐르고 무지개는 푸른 담쟁이가 늙은 소나무 위에 걸린 듯 하다. 신령한 노인이 며칠 머무르더니 .... 옛날 보조가 유적을 보였네." 

 

투명한 뒷면이라 촬영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유리에 비치고 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보면서 비밀이 들킨듯 했다.

 

 

 

 

 

 

 

 

 

 

  대웅전은 막돌로 쌓은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상부에 배흘림이 있는 둥근 기둥을 세웠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조선 후기에 지은 것으로 보이지만 조선 전기 건축 수법도 부분적으로 볼 수 있어 학문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다고 한다.  

  안에 들어가니 보살  세 분이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있었다. 나도 향불을 피우고 몇 차례 절을 올리며 적천사를 찾게 되어 감사하다고 뇌었다.   

  대웅전 앞에 괘불탱화 걸기위한 지주가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 탱화는 사찰에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걸게  된다. 내가 방문한 날은 평일이니 탱화를 볼 수 없었다.

  문화재 소개 자료에 의하면 이는 숙종 21년(1695)에 그려진 것으로 세로 1230, 가로 530 센티미터이라고 한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오른 어깨로 비켜 올려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는 보살 형태의 독존도 형식 그림으로, 다른 인물이나 배경을 전혀 표현하지 않은 단순한 구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보관(寶冠)은 중앙에 5구의 화불(化佛)을 안치하고 그 앞쪽 좌우에 걸쳐 금박 처리한 봉황장식을 두었으며, 신체는 머리에 큼직한 관을 쓰고 어깨를 넓게 표현하여 다소 둔중해 보이지만, 타원형을 이루는 얼굴은 눈·코·입을 단정하게 그려 넣어 우아함이 느껴진다. 색채는 주홍과 녹색을 주조로 하여 화사한 연분홍색과 옅은 청색, 양록 계통의 연녹색을 사용함으로써 갸름한 형태의 얼굴과 함께 화면 전반에 걸쳐 밝고 명랑한 느낌을 준다. 또한 그림 하단에 화기가 남아 있어 그림이 강희 34년(1695)에 조성되었고, 화원으로는 상린(尙鱗) · 해웅(海雄) · 지영(智英) · 성종(聖宗) · 상명(尙明) 등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 괘불을 걸기 위한 괘불대 지주는 대웅전 앞에 석조로 한쌍이 서 있는데, 강희 40년(1701)에 거사 경순(敬順) 등이 참여하여 만들었음을 알려주는 명문이 있다. 이 자료들은 17세기 말 괘불 및 괘불을 거는 지주의 모습을 알려 주는 좋은 자료가 된다."

   값진 자료를 한 번 보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으나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감로수에 목을 축였다.   심산 화악산 석간수 인지라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적천사에 천연기념물 402호 은행나무가 있다. 이 사찰에 여러 가지 귀중한 것이 많지만 은행나무 역시 그 어느 것 못지 않게 유명하다.  높이가 25-28미터이고 둘레가 11미터이다. 고려 명종 5년(1175)에 보조국사가 지팡이를 꽂은 것이라고 하니 수령은 800년 정도 된다.  

 

   암나무로 올해도 은행이 구슬처럼 주렁주렁 달려 달려 있었다. 이제 녹색은 거의 볼 수 없고  열매며 잎들이 노랗게 물들어 찬란한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의 은행나무는 맹아 및 유주가 어느 은행나무보다 발달해 있다. 맹아는 새로난 싹을 말하며 유주(乳柱) 는 가지 사이에 혹 또는 짧고 뭉뚝한 방망이처럼 생긴 가지를 말한다. 유주는 뿌리가 기형적으로 변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흔히 볼 수 있으나 우리나라의 은행나무에는 보기 힘든 것인데 여기에서는 볼 수 있다.   

  누군가 나무에 오색실을 매달았다. 소망을 빈 것이리라. 흔적만 남아있었지만 간절했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잎과 열매는 어떤 관계일까, 어쩌면 어머니와 자식 사이일 것 같다. 잎이 먼저 나와서  기다리다가 열매를 맺으면 지극하게 보호한다. 그리고 마침내 열매가 노랗게 익어가면 잎도 노랗게 바뀐다. 또 열매가 더 지탱하지 못하고 나무밑으로 떨어지면 잎도 같이 내려와 스크럼을 짜고 지킨다.

  "부탁입니다. 우리 아기를 밟지 마세요."

  어머니 은행잎이 간청을 하고 있다.  차마 밟을 수가 없어 몇 걸음 물러났다.    

 

 

    나이 든 탓일까, 굵은 가지가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당당하여 정정하다. 시공을 초월한 기상에 숙연해진다.  

 

 

 

  절 안 쪽에 영산전(靈山殿)이 있다. 산이 찾아와 사람을 안아주고 사람이 찾아가서 산에게 안기니 번뇌가 조용히 등을 넘어간다.

 

 

 

  도량 주변에 나무들이 많다. 특히 우거진 소나무 숲이 장관이다. 숲길 앞에서 절을 향해 조용히 합장하고 내려왔다.   

 

화악산 울을 삼고 남산도 같이 불러

수호신 사천왕상, 괘불탱화 펄럭이네

감로에 마음을  씻고 대웅전에 합장하다

 

팔백년 은행나무 크고 넓게 우뚝서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무량으로 보듬으니 

또 다른 사랑법이며 보시를 배운다

 

 

폐교된 청도 동부국민학교 - 적천사 입구 마을 어귀에 있다.

 

 

 

 

 

 

 

 

'청도가 좋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도, 제1회 전국한시 백일장 시상식  (0) 2022.10.25
백곡 마을  (1) 2022.10.12
제7회 청도예술제  (0) 2022.10.10
2011 청도반시 축제  (0) 2022.10.10
예원문학회 청도문학기행  (0) 2022.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