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74)증 예조판서(禮曹判書) 겸 대사성(大司成)인 박치복(朴致馥) 선생의 옥산재(玉山齋)
박영환2026. 9. 17. 21:12
옥산재청도신문(2026년 9월 16일)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74)
증 예조판서(禮曹判書) 겸 대사성(大司成)인 박치복(朴致馥) 선생의 옥산재(玉山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 석통 마을에 위치한 옥산재(玉山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인물은 반송 박치복(伴松 朴致馥, 1812〜1869)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밀성이고 흑석리 출생이다. 어릴 때부터 극진한 효심과 학문이 높아 원근 유림들이 크게 존경하였으며 증 숭록대부(崇祿大夫) 행 예조판서(禮曹判書) 겸 대사성(大司成)에 올랐다.
밀성 부원군에 봉해진 행산 세균(杏山 世均)은 공의 17대조이다. 행산공은 문빈(文彬 ,中書典 文衡)과 문익(文翊) 두 아들을 두었는데 목은(牧隱)은 가전삼학사(家傳三學士)라 하였다. 15대조 신열(臣悅)은 증 이조판서이며 12대조 형달은 점필재 문인으로 통례원 인의를 지냈고 10대조 안국암 대성(安國巖 大成)은 남명, 삼족당, 회재 등과 교유했다. 어느 날 회재 이언적이 공을 찾아왔으나 만나지 못하고 가면서 시 한 수를 남겼으며 후손들이 이 시를 마을 건너 바위에 새겼다. 그 뒤부터 이 바위를 안국암이라 부르고 있다. 8대조 양춘(陽春)은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임진왜란 중 조모와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애통호곡 하며 자리를 비우지 아니하니 왜적도 출천지효(出天之孝)라 칭송했다. 밀양시 부북면에 여표비가 건립되어 있으며 ‘삼강록’과 ‘밀주지’에도 그 행적이 등재되어 있다. 증 이조참의이며 배향하는 보강재(普岡齋)가 있다. 6대조 진인(振仁)은 모친상을 당하여 3년 시묘를 했는데 무덤 옆 바위 틈에 죽순이 돋아나 산과 마을을 죽암(竹巖)이라 했다.
옥산재는 콘크리트 양옥집이다. 1898년 창건될 당시에는 옥산서당으로 시작했고 건물도 목조 와가이었지만 사라호 태풍에 무너진 이후 1963년에 현손 재부(載富)가 현재 건물로 중건하고 재호(齋號)도 옥산재라 했다.
석통마을을 창동(創洞) 한 분은 석강 박의영(石岡 朴儀永, 通政大夫, 景福宮 五衛將)이다. 그는 반송의 아들이며 마을에 정착한 뒤에는 선대를 추모하고자 은행나무 3그루를 심고 인∙의∙예(仁義禮)를 강조하며 둘째 아들 산은 수의(山隱 秀義)로 하여금 옥산서당을 짓게하고 큰 학자인 화곡 성대기(華谷 成大器)를 초빙하여 후손과 원근 학동들이 글을 읽게 했다. 이곳은 6.25전쟁 때 피난 온 창녕 유생들이 조직한 선유계(仙儒契)와 지역유림이 결성한 동연계(同硯契) 중심으로 한 지역 중심 서당이었다. 석강은 국권을 침탈한 일제에 항거한 독립투사이기도 하다. 기미 만세운동 때는 지역의 선봉이 되어 많은 시위대를 이끌고 만세 현장인 대구 향교로 달려갔다. 이런 연유로 일제의 감시대상이 되었고 조상의 묘적(墓籍)을 압수하겠다는 위협을 받기도 했다. 또 산은 수의는 방계 선대인 오졸재 박한주 및 탁영 김일손, 망헌 이주 선생을 배향하는 차산서원의 건립을 위해 부지를 제공했다.
석통마을에는 지금도 13기의 고인돌이 남아있으며 마을 안길이 이 고인돌을 사이에 있어 ‘돌 사이로 통행한다’는 의미로 석통(石通)이라 불렀다고 한다.
석강공은 1877년 3월, 오졸재 박한주 선생의 태생지인 차산리 부근인 이곳을 풍수지리적 명당이라 판단하고 가솔을 이끌고 이거하여 정착했다. 그 뒤 석강공의 아들 삼형제는 8명의 아들을 낳았고 또 그 이들 후손은 22명으로 늘어났다.
반송 공의 후손 중에는 광희(전 풍각면장), 삼도(전 육군대령), 해영(전 공군 대령), 진흠(전 농협 전무)과 지금도 4대 봉제사를 지내는 등 숭조 정신이 투철한 종손인 정현(한의원 원장)이 있다.
이날 무흠(전 신라 신덕왕 참봉)씨가 문중의 자료를 기반으로 설명해주었다. 그는 제례비요 해설 2천권을 친인척에 무상제공을 하기도 했다.
박치복 교지
박의영 교지박의영연자방아 - 마을을 형성하고 연자방아를 설치하며 당시 동원된 인명부와 금전출납 등을 기록한 석침소(石砧所)가 종가집에 전해진다.옥산서당에서 제자를 길러냈던 화곡 성대기 ( 華谷 成大器 ) 유허비흑석리 석통마을(사진: 이정식 시니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