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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73)자손이 크게 번창한 지촌리(芝村里) 파평윤씨(坡平尹氏) 소정공파(昭靖公派)의 숭덕재(崇德齋

숭덕재
청도신문(2026년 9월 2일)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73)

자손이 크게 번창한 지촌리(芝村里) 파평윤씨(坡平尹氏) 소정공파(昭靖公派)의 숭덕재(崇德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인협회장,  교장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에 자리 잡고 있는 숭덕재(崇德齋)를 찾았다.

  이곳은 파평윤씨 소정공파(昭靖公派) 재실로 비교적 최근인 2007년에 창건했다. 건물구조는 돈의문(敦誼門)’ 편액이 걸려있는 뱃집 와가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콘크리트 양옥 건물이 있다. 정면에는 재사의 이름인 숭덕재(崇德齋)’ 편액이 있고 내부에는 숭덕재 상량문  낙성운 등이 걸려있다. 마당에는 숭덕재 건립을 기념한 표석이 있고 재사 밖에는 파평윤씨 소정공파 숭덕재 사적비(坡平尹氏 昭靖公派 崇德齋 事蹟碑)’가 세워져 있다.

파평윤씨(坡平尹氏)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인 태사공 신달(太師公 莘達)이고 5세손 문숙공 관(文肅公 瓘)은 고려 예종 때 대원수(大元帥)로 여진족을 정벌하고 옛 고구려의 강토(疆土)에 구성(九城)을 쌓은 뒤 두만강 너머 선춘령(先春嶺) 고려 경계비를 세웠다.

  윤문(尹門)은 고려에 이어 조선까지 많은 문무장상(文武將相)과 유학자, 명현(名賢)을 배출했다. 중시조인 15세 소정 곤(昭靖 坤)은 추중익대좌명공신 숭정대부 이조판서 파평군(推忠翊戴佐命功臣崇政大夫吏曹判書 坡平君)이다. 23세 경신(慶莘)은 참판(參判)의 관직을 마다하고 1635년 울산 신정리(蔚山新亭里)로 이주하여 그 지역에서 후손들이 100년 간 머물었다. 26세 증손 기주(起周)는 경산시 자인면 계림(鷄林)으로 이주하여 그후 후손들이 100여 년간 주인 역할을 했다. 그 뒤 불의의 화재로 28세 원봉(元鳳)의 동생 원향(元向, 通政大夫)은 아들 수흥(守興)과 수평(守平)을 데리고 이곳 지촌리(芝村里)로 입향한 뒤 지금까지 200여년 동안에 자손이 크게 번창했다. 가까이는 32세 상봉(相鳳) 상윤(相潤) 상옥(相沃), 상우(相宇), 상권(相權)의 후손만도 이곳 지촌리를 중심으로 각지에 300여호나 된다. 특히 상윤은 아홉 아들을 두어 그 후손인 6촌간만 해도 백여 호가 된다.

  숭덕재 건립대표인 운봉 용만(雲峰 龍萬) 2007 8 파평윤씨 소정공파 숭덕재 사적비를 찬하면서 선조의 웅지를 받은 우리 지촌 문중이 때늦은 감이있으나 행정 당국에 등록된 명실공히 파평윤씨 지촌 문중 세거지로 정하고 숭모재를 건립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고 우리 후손의 임무이다. 이곳에서 선조(先祖) 제사를 모시고 후손 만세에 근본을 삼고자 이곳 삼보산(三寶山) 자락에 숭덕재의 사적비를 세우노라 했다.

  상량문에는 동쪽 장육산 마루에는 아침 해가 뜨고, 서쪽 삼보산은 우리들을 감싸주고 남쪽 공암 칠경 병풍처럼 둘러있으며 북쪽 구룡산 북향 재배 합장하는 듯하다. 위로 보니 구름 걷힌 맑은 하늘이요, 아래로는 맑은 시내 쉬지 않고 흐른다하며 이런 환경 속에서 후손들이 선대를 받드는 속에 번창하기를 기원했다.

  숭덕재 낙성운에는 숭덕재의 과업이 완성되니 신령스러운 빛이 배로 밝아오네. 이곳은 경건하게 제사 지내는 곳이요, 일가 친척 근본에 보답하며 정이 깊도다. 삼보산 우뚝 솟아 상서로운 기운을 더하고, 지수(芝水) 물줄기가 화합의 소리를 드높이네. 고향 마을의 등불이 되어 모범과 본보기가 되어 후손들의 길을 열어가리 했다.

  이날 후손인 순영(전 지촌리 동장)씨가 문중의 자료를 기반으로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숭덕재 사적비
숭덕재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