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91)
청백리로 명성이 높았던 남양부사 김경원(金慶元) 선생의 경의재(景義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前 교장
각남면 신당리 이곡(耳谷)마을에 푸른 대나무를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경의재(景義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김경원(金慶元) 선생이다. 공은 1554년(명종 9)에 출생하여 1616년(광해 8)에 별세했다.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고려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의성군에 봉해진 용비(龍庇)의 11세손이며 조부는 문과에 급제한 윤인(允仁)이며 아버지는 금부도사(禁府都事) 균(鈞)이다.
공은 1578년(선조11) 무과에 급제하여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경상좌도 수군 우후(慶尙左道水軍虞候)에 이어 첨사(僉使)를 지냈다. 그 뒤 통훈대부(通訓大夫)로 남양부사(南陽府使)를 지내며 청백리로 명성이 높았으며 학문과 의를 행함에 유림의 표준이 될 정도로 신망이 두터웠다. 임진왜란 뒤 벼슬에서 물러나 신당리 이곡마을에 터를 잡아 입향했으며 그 이후 후손들이 대를 이어 이곳에 살게 되었다.
아들 윤선(胤先)은 통덕랑(通德郞)이며 장손 우인(友仁)은 가산(嘉山) 군수이다. 그는 숙종 때 백리지재(百里之才- 백리쯤 되는 땅을 다스릴 만한 재주)로 뽑혔는데 과연 관장하고 있는 군읍의 백 리 길을 지날 때 백성들이 선정에 감읍하여 일산(日傘)을 받쳐 들었던 일이 오늘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둘째 손자 우의(友義)는 통덕랑(通德郞)이었고 증손인 삼석(三錫)은 부교리(副校理), 시욱(時郁)은 무과 급제, 천석(千錫)은 통덕랑, 응석(應錫)도 무과 급제, 태석(泰錫)은 통덕랑이고 현손(玄孫) 몽룡(夢龍) 역시 통덕랑, 5세손 덕해(德海)는 통정대부를 지내는 등 벼슬이 끊이지 않았다.
경의재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목조 와가이며 전면에 3칸 대문이 있다. 1982년에 창건했으며 2003년에 식당 및 관리동을 새로 짓는 등 중수했다. 마루 벽에 이헌주(李憲柱)가 쓴 ‘경의재기(景義齋記)’, 강석황(姜錫鎤)이 지은 ‘경의재상량문(景義齋上梁文)’, 11세손 병호(柄灝, 청도향교 전교 역임)가 쓴‘경의재원운병서(景義齋原韻 幷書)’ 등이 걸려 있다.
원래 ‘경의재’ 이전에 묘제로 지었던 추원재(追遠齋)가 있었다. 병호는 ‘경의재 원운 병서’에 “일찍 조상을 섬기는 몇 칸의 재실이 있었으나 그 규모가 협소하여 새로 지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경의재 원운을 지었고 유림들이 그에 따라 차운(次韻)을 했다.
이곡에 머물러 산 것이 옛날 어느 해이던가/ 훌륭한 선조의 유풍 아직도 완연하네
수무(數畝)에 심은 가래나무와 뽕나무 산 그림자 속에 잠겨 있고/ 사방 이웃의 다듬이 소리 앞내 물소리와 어울렸네/ 조상에 보답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공사에 어려운 일이 있어 일찍 완성치 못했네/ 새로 재실을 지은 데는 진실로 깊은 뜻이 있으니/ 장차 선대의 위대한 덕을 드러내고자 함이로다.
의성 김씨 문중에서는 삼세제단비(三世祭壇碑)를 비롯하여 선대들의 묘소에 비석 등 석물을 두루 갖추었다. 이는 후손들의 지극한 숭조 정신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이곡마을이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유림의 표준이었던 청백리 남양부사
나라에서 뽑았던 백리지재 가산군수
거룩한 선대의 덕행 후손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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