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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경남 의령 일붕사

일붕사

 

행전 박영환

일붕사 전경

  2023년 3월 31일 경남 의령에 위치한 일붕사를 찾았다. 마침 벚꽃을 비롯한 꽃들이 만개한 때인지라 절의 모습도 더 한층 밝게 느껴졌다. 

 

 

꽃이 문을 열고 닫는 3월 마지막 날

꽃 속에 꽃을 얻듯 일붕사에 들어섰다

봉황이 큰 부리로 물어다 짓고

다시 쪼아 굴을 파서 부처님의 미소를 모시다

저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고

태종무열왕의 목소리도 들린다

전쟁에 목숨을 잃은 영령들은

둥근 종소리를 들으며 편히 쉬고 계시는지요

잠시도 멈추지 않는 발자국이

작고 큰 붓을 들고 새로운 일기를 쓰는데

쇠망치로 내리쳐도 꼿꼿하게
제자리를 지키던 미륵불을

쉼 없는 폭포가 씻고 씻어 받든다

 

('일붕사에서' - 행전)

 

절 입구
대웅전

 

 일붕사는 천혜의 자연 요건을 갖춘 봉황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이 사찰이 유명한 것은 동굴법당. 이 법당은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영국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대지가 5000평이고 임야는 3만여 평이며 석굴 대웅전은 138평이고 석굴 무량수전은 90평이라고 한다.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과연 그 소문이 헛된 것이 아니란 것을 실감했다. 

  오래된 사찰이다. 서기 727년 신라의 혜초스님이 창건한 성덕암이 현재 일붕사의 전신이다. 일붕사는 약 1330년 전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할때 최고의 격전지였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서 말말굽 소리가 들리고 창칼 부딪히는 소리도 들리는 듯 했다.

  당시 왕군이 봉황대 영역 안에 이 지역의 수많은 영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찰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종소리를 들으며 영령들은 편하게 쉬시는지?

 태종 무열왕의 삼왕자가 계셨던 궁소 봉황대의 사찰에서 비로자나불을 안치시켜 호국 일념으로 성덕왕의 덕을 기렸고 성덕대왕이 봉황대의 산세가 빼어남과 선당의 얼이 베인 곳을 천추만대에 기념하자는 뜻에서 자신의 왕호를 내려 성덕사라는 귀족적 사찰을 지었으니 과히 그 명성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 사찰도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조선 성종25년 국령으로 불사 33개소를 회합함으로서 그 영향을 받아 승려를 학대하고 

사찰을 파괴함으로서 봉황대 성덕사는 어쩔 수 없이 사찰을 궁류면 운계리 팔사곡 자사산으로 옮겨 정수암으로 그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그 후 (148년전)에 장사곡 출신의 어떤 인물이 들어와 스님을 축출하고 암자를 파괴할 때 쇠망치로 수없이 내려쳐도 미륵불상 한 불이 꽂꽂하게 버티어 부서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지켜본 주승이 범상치 않은 일이라며 그 불상을 업고 합천군 연호사로 달려가서 모셨다고 한다. 

  지금의 연호사 불상 중 일부분이 성덕사 불상이라고 전해온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암자로 있다가 1934년 8월 26일 당시의 면장이 산주와 더불어 봉황대의 덕경을 도우기 위하여 벚꽃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경내에 벚꽃나무가 많다. 아무튼 그렇게 하여 관세음보살상과 여래불상을 모셨으나 소실되어 다시 이야용 스님이 법당을 짓고 성덕사라 하였다.

   1984년 10월 24일 누전으로 인하여 또다시 성덕사법당이 완전 소실되었으나 1986년 7월 26일 사단법인일붕선종회 (지금의 재단법인 일붕선교종) 창종주 일붕 서경보 종정 큰스님이 혜운 주지스님을 부임케하여 이 산 이름이 봉황산이라 산의 기가 너무 세어 사찰이 부지 못하니 기를 줄이기 위해 굴을 파야 한다고 하시므로 주지스님이 불사를 이룩, 사찰명을 일붕사로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조사전 ,약사전과 관음전을 거쳐 대웅전과 무량수전에 들려 합장하고 절을 올렸다.  자주 오시라라는 스님의 말씀에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절문을 나섰다. 

 

벚꽃 속의 칠성각
무량수전
무량수전 내부
용왕당
관음전
돌탑